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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Sep 26. 2019

밖의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싶어

수고스럽고 고생스러웠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째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면 집보다 밖을 택했다. 작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머리도 아파오고 계속 졸리고 무력해지는 게 당시 나의 상태였다. 근데 그렇다고 엄마들과 같이 모여서 어딜 같이 다니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홈스쿨링을 하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래들이 기관에 다니는 시간에 뭔가를 같이 할 사람들도 없기도 하고, 또 즉흥적으로 나들이를 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나 혼자에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약 2주 동안 과천 서울대 동물원, 서달산 유아 숲 체험장과 합정 마르쉐 채소 마켓을 다녀왔다. 다녀와보니 차로 이동하면 크게 힘들일이 없었다. 그래서 과천 서울대 동물원은 비교적 편안하게 다녀왔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힘든 건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다녀오는 것이다. 힘든 걸 알기에 보통 아이들과 다닐 땐 차를 타는 것을 항상 선호했다. 그런데 요즘같이 날씨 좋은 날은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들과 걷는 건 정말 다른 건데... 그래서 서달산 유아 숲 체험장은 집에서 멀지 않아 당연히 걸어갔다 왔고 이도 크게 힘들진 않았다.

서달산 유아숲 체험장

그런데 지하철을 타서 다녀온 첫째 아이 축구 수업과 합정 마르쉐 채소 마켓이 단연코 고생과 힘듦의 탑이었다.


우선 지하철까지 가는데만 아이들과 내 걸음으로 15분이 걸리고, 그것도 가는 길에 중간중간 차가 다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승객이 많기로 유명한 9호선에 도착하면 더 정신을 꽉 잡고 있어야 한다. 5세인 둘째 승비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그렇게 지하철로 집으로 돌아오면 오는 길에선 거의 반은 방전이 된다. 심각한 예로 축구 수업에서 돌아오는 지하철 역에서 가방을 두고 올뻔한 불상사가 생길뻔했다. 지하철이 아직 오지 않아 의자에 앉아있다가 지하철 오는 소리를 듣고 내 가방은 둔 채 아이들만 챙겨 걸어간 것이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날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 보니

저기요 손가방 두고 갔어요! 몇 번을 불러도 안 듣네. 허허허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미소를 띤 채 뛰어오셨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가보니 정말... 가방을 고스란히 의자에 두고 왔던 것이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감사하단 말을 한 대여섯 번은 한 것 같다. 듣지도 않는 나를 몇 번이고 불러주신 것도 감사하고, 웃으면서 말해주셔서 감사했고, 아줌마라고 부르시지 않고 '저기요'라고 불러주셔서 감사하고, '손가방'이라는 요즘 흔치 않게 쓰는 단어를 들어서 또 좋았고. 여러모로 감사했다. 벌써 며칠 됐다고 그분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감사했다.


지하철 안에서 어린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탄 나를 딱하게 여기는 분들이 계셨다. 보통 나이 드신 할머님과 할아버님들이었다. 열차 안에 들어오자마자 날보고 이리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시던 할아버님이 기억에 남는다. 노약자석에서 최대한 자리 차지를 많이 하지 않기 위해 내 무릎 위에 둘째를 앉히고 첫째를 옆에 앉혀 두 자리에 앉는데, 옆에 계시던 할머님께서 '엄마 힘들어. 여기 할머니 옆에 앉아. 넷이 앉아도 충분해'라고 하셨다. (그런데 죽어도 둘째는 내 무릎 위에서 안 내려갔다는).


합정 마르쉐 채소마켓 점심


동생과 함께했던 합정 마르쉐 마켓에서는, 컨디션 난조의 둘째가 징징거리며 안아달라고 해서 동생이 십여분을 업어서 걸었고, 너무 덥고 힘들어 급히 들어갔던 분식집에서 나는 둘째에게 화를 냈다. ' 너 왜 이렇게 징징거려. 승비가 몇 킬로인데 엄마랑 이모가 너를 계속 안고 다니겠어!' 화를 내니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측은해지며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마르쉐 마켓은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거지, 애들이 원해서 온건 아닌데... 요 며칠 힘들었을 텐데 왜 내가 5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혼자 안 걷는다고 화를 내고 있는 거지?


둘째를 옆쪽으로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승비 많이 힘들어? 힘든데 엄마가 계속 데리고 다녀?' '응.. 힘들어...' '아- 그랬구나 집에 있고 싶었구나. 그렇지 우리 승비..' '응. 흑흑흑. 집에 가고 싶어' '미안해 엄마가. 우리 내일은 집에서 하루 종일 쉬자. 공부도 조금만 하고. 우리 승비 아직 아가인데 엄마가 힘들게 데리고 다녀서 미안해. 우리 아직 아가인데... 몇 살이더라...' 그랬더니 손가락 다섯 개를 쭉 피고 손 등 쪽을 얼굴에 붙인 채 흑흑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너무 귀여워서 꼭 껴안아주었다. 둘째는 정말 뭘 해도 예쁘다. 하루 종일 나와있어서 꼬질꼬질한 얼굴에 콧물 눈물범벅이어도 말이다.


엄마가 자기 마음을 알아줘서 좋았는지 그 이후부터는 아주 생글생글 웃고 다녔고, 좋아하는 간식을 좀 먹으니 집에 갈 때까지 아주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내 동생과 상수역에서 헤어질 때 서로 반대 방향이었는데, 동생의 지하철이 먼저 와서 떠나는 이모를 태운 지하철을 아이들이 전속력을 다해 뛰며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는 모습은 너무 사랑스럽고 따스했다. 동생도 나도 보통 차로 움직이는데, 이렇게 둘 다 지하철을 타고 만난 건 참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추억은 하나가 더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덕길인데 둘이서 으쌰 으쌰 하며 어깨동무하고 오는 그 모습도 내 마음속에서 찰칵 사진을 찍었다. 다리도 튼튼, 마음도 튼튼한 아들들로 크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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