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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Oct 26. 2019

일부러 다른 동네의 학원을 간다

우린 남는 게 시간이니까

이제야 우리의 삶에 루틴이 생기고 있다.

난 즉흥적인 걸 좋아하지만 그래도 루틴을 토대로 그 안에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걸 좋아한다.

 

축구, 미술, 피아노, 수영으로 일주일에 4일은 스케줄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매주 목요일마다 하는 미술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미술학원이었다. 미술을 배우러 가는 게 아니고, 미술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첫째에게 여유롭게 미술의 시간을 주길 원했다.


그래서 나의 선택 조건은

1. 아이의 자유로운 미술 활동을 장려하는 곳 - 이름을 붙이자면 창의 미술?  

2. 둘째와 함께 같은 시간에 들을 수 있는 곳 - 그래야 내가 쉴 수 있기 때문에

3. 우리 동네가 아니어도 되니 스튜디오가 좀 느낌 있는 곳 - 공간 분위기에 민감함


그래서 찾고 찾은 곳은 정동길에 있는 쥬트 아뜰리에였다.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곳이었다. 가격은 처음에는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위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곳은 내가 찾기론 이곳뿐이었기 때문에 외식을 몇 번 줄이자고 혼자 다짐했다 (별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벌써 세 번째 수업을 갔고, 2달 등록을 했기 때문에 11월 말까지 다닌다. 3시 반에서 5시까지 1시간 반 수업인데 항상 정동길에 가는 그 시간은 설렌다. 나도 아이들도. 청담점도 우리 집에서의 거리가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동을 택한 건 내가 그 동네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매주 목요일,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간다.

항상 시작시간보다 훨씬 여유 있게 일찍 나간다.

우리에게 남는 게 시간이기에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을 지나 2 정거장이 지나면 폴짝 셋이 뛰어내린다. 처음엔 미취학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대중교통수단을 타는 것이 굉장한 부담이었는데, 이젠 나도 아이들도 많이 익숙해졌는지 괜찮다. 오히려, 참 좋다. 차를 운전하면 나는 운전하느라 정신이 빠져있고, 아이들은 뒤에 둘이 앉아 서로 다른 세계에 빠진다. 사실 그 시간을 지금도 가끔은 즐긴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고, 아이들은 뒤에서 만화 얘기를 쏙닥거리는 그 시간. 아이들은 카시트에 매여있으니 창밖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렇게 둘이 얘기만 하나보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큰 정류장에서 걸어가 종로로 들어가는 버스를 탄다.

어떤 버스던지 경로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똑같은 구간을 본다. 이젠 어디가 어딘지 대충 기억하는 것 같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노을이 지는 시간이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는데 노을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우린 꼭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렇게 시청역에 내려서 정동길로 가서 쥬트 아뜰리에로 가는 길은 정말 행복 그 자체다.

덕수궁의 돌담길을 걸어가는 그 길. 어떤 때는 버스킹 공연도 있고, 어떤 분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신다. 아이들을 항상 같은 자리에서 매주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볼 때마다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예쁘다.


그렇게 아이들을 아뜰리에에 데려다주면 나는 1시간 반의 휴식을 갖는다. 처음엔 카페를 갔고, 이번 주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 들어갔는데 아직 전시는 준비 중이었고 뜻밖의 자료실을 찾았다.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하는 나는 요즘 통 가지를 못해 찜찜했는데 보물을 만난 것 같았다. 이곳에서 로고들이 가득한 책을 보며 로고 구상도 해보고, 건축가 황두진 님이 쓴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를 읽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했다.


퇴근시간과 겹치지 않게 돌아갈 때는 조금은 서둘러 버스를 탄다. 주로 내 양손엔 아이들이 만든 미술 작품들이 한가득이다.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시간대가 5시 반쯤이기 때문에 버스에도 사람이 많이 붐빈다. 그런데 좋은 분들이 아이들에게 자리를 많이 양보해주셨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갈 때쯤 여의도 쪽으로 해가 진다. 정말 딱 그 타임에 그곳을 지난다. 지난주엔 해지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아이들에게 '얘들아 노들섬에서 내려서 잠깐 해지는 거 보고 엄마 친구 책 선물 좀 하고 집으로 갈까?' 하며 제안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승낙해주었고 우리는 노들섬에서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그 아름다운 석양을 구경했다. 10월의 날씨는 너무나 소중하기에. 곧 추워질 그날이 오기에 지금 이런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렇게 한강대교를 걸어 노들역까지 걸어왔다.


그렇게 목요일은 미술학원을 위해 약 5-6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온다.


버스에서 첫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아이의 머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가는 그 버스길. 둘째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미리 준비한 초콜릿을 쥐어줬을 때 그 해맑은 웃음.

우리의 '남는 게 시간인 현재'가 얼마나 큰 축복의 시간인지 조금씩 느끼고 있다.

조금 더 추워지는 11월은 우리의 학원 길이 어떨지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 아직은 여전히 미술학원에 가는 길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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