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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Aug 30. 2019

유치원 자퇴 원서를 쓰다.

마지막 하원을 하면서 나 혼자 울면서 나오다.  (이사 D-3)

이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딱 앉았는데

신기하게도 첫째 유치원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통화하는데 또 울컥했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관심이 마음 깊숙이 와 닿으면 난 잘 감동하고 잘 울기도 하는 것 같다.




오늘은 아이들의 마지막 등원이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자퇴 원서를 썼다.

마지막 날이라 친구들에게 준다며 긴 막대 같은 젤리를 한통씩 사 가지고 등원을 했다.



한 가지 확실히 알려야 할 것이,

우리 아이들의 홈스쿨링은 9월의 이사가 아니었으면 시도도 못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첫째가 6개월 후 초등학교에 가는 게 아니었다면 더더욱 안 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처럼 급격한 환경적 변화가 없음에도 홈스쿨링을 시도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집에서 하는 홈스쿨링. 그래서 나에게도 의미가 깊은 기간이 될 것 같다.


오늘 유치원에서 작별을 하는데

5세 7세 아들들은 아직은 어려서 그런 건지 싱글벙글했다. (남자들이 단순한 걸 지도)


그런데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2년 동안 보냈던 유치원, 선생님들, 내가 매일 2번씩 왔던 등원 하원 시간, 회사 다닐 때 반차를 내고 갔던 참여수업들, 이곳에서 알게 된 좋은 엄마들, 아이 친구들... 한꺼번에 쓰나미같이 큰 아쉬움과 슬픔으로 나에게 몰려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가 유치원을 떠나서 눈물이 나왔던 것보다도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고 하는 게 아닌지에서 오는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일도 잘하고 싶고, 애들도 잘 키우고 싶고, 애들과 어릴 때 더 많은 추억도 만들고 싶고, 이걸 홈스쿨링 6개월 동안 다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나같이 회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활동하는 만큼 알려지고, 그만큼 커리어를 쌓고 그것에 어느 정도 상응하게 돈을 번다.


그런데 홈스쿨링이란 선택을 한 자체가 일보다 육아를 택하겠다로 보일까봐도 두렵고, 그만큼 내가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보일까도 두렵다. 사실 보이는 것 외에도 나도 상황이 그렇게 돼버려서 정말 일에서 조금씩 멀어질까 봐 두렵기도 하다. 아마도 나는 사람들에게 내 존재가 잊혀지는 게 싫은 거다. 지금 이렇게 쓰는 글들도 나의 이런 마음을 알리고 싶어서 일 것이다. 역시 글을쓰는건 관종의 형태가 맞았다. 처음엔 부정했지만 지금은 인정한다.


솔직히 이성적으로 보자면 나는 지금 아이들을 9시부터 5시까지 기관에 데려다 놓고 일에만 열중해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내 일은 걸음마 단계이다. 이 걸음마 단계를 얼른 떼고 우뚝 서야 하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질까 봐 걱정하는 거다. 늦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조급해하듯이, 나도 내 일이라는 이제 시작하는 약간 늦된 아이를 보면 조급한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떠오른 어떤 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보다 더 한국을 더 잘 아는 하버드 박사 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의 한국 표류기이다. 사실 제목이랑 내용이 아주 딱 떨어지지는 않는데 (아마 제목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그 자체로도 참 좋았던 책이다. 인문학의 중요성과 토론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한 부분을 공유하자면,


아이를 아이로 보지 말고 나와 동등한 친구로 대하며 토론해야 한다. 당연히 토론 주제들도 정치 경제, 과학예술 등 수준이 높아야 한다. 결코 아이는 어리지 않다. 어리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어린것이다. 어른들의 머리는 벽처럼 막혀있고 아이들의 머리는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인다


내 블로그에 2014년에 썼던 리뷰가 있어서 링크를 공유한다. https://blog.naver.com/kkgina84/130186787171


속도보다는 방향에 집중하자. 올바른 방향을 향한다면 속도는 느리던, 좀 더디던, 구불구불하게 가던, 목표지에 가게 될 것이란 믿음을 갖자.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 브런치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 블로그엔 이미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기엔 이웃이 (나름. 꽤) 많아졌고, 영어 원서라는 전문분야를 띄는 블로그가 (나름) 되었다고 생각해서 쓰는 게 꺼려졌다.


10년 동안 일기같이 썼던 블로그가 그렇게 알려지고 내 일과 삶을 표현해주는 매개체가 된 것은 감사하나, 또 나의 마음을 적어내는 공간이 없어져서 뭔가 허했는데 이 브런치가 그런 공간을 준 것 같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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