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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어리랏다 Jun 17. 2021

내가 엄마한테 자꾸 짜증이 나는 이유

"그만 좀 해"


이 네 글자, 1초도 안걸리는 이 말 한마디에는 저의 온갖 짜증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는, 참다 참다 튀어 나온... 하지만 요근래 너무나 많이 튀어나오는 제 마음입니다. 






코로나로 촉발된 사회의 변화는 거의 백퍼센트 가까이 강제로 저를 집 안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집에 강제로 있어 보니 생각보다 제가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같은 것은 없습니다. 밖에 나가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이렇게 집 안에 있다 보니, 제 삶에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부모님과, 특히 엄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같이 있는 시간이 정말 몇 배로 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유를 찾아 바다가 보이는 남쪽으로 떠나 자취를 시작했고 그렇게 10년 가까이 엄마는 시간을 내어 올라와야 만날 수 있는 사이로 남아 있었습니다. 직장을 옮기며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도 당연히 혼자 살 것을 확신하며 왔지만, 뉴스에서만 보던 서울의 집 값이 정말 엄청나서 본가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을 이리저리 알아보는 그 짧은 몇 주 동안, 나는 지방에서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 괜히 실감이 나 지난 세월에 감사 인사를 올려 보내고 싶었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본가로 들어온 후에도 집에 오래 붙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겪어보는 서울생활의 즐거움과 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감격스러운 재회의 기쁨에 몸둘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기 때문입니다. 몸둘 바를 모르는 저의 습성은 이내 습관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답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이유없이 집에 돌아가기 싫었는지, 왜 지금도 집에 있으면 불편한 지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예전에도 알았었겠지만 이제 인정해야겠다는 결심이 새로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 방이 따로 없는 조그만 집, 끊임 없는 잔소리, 지나친 일상생활의 간섭...

많은 이유가 있지만, 결국 제가 이렇게 답답하고 집에 있기 싫은 이유는 안쓰러운 부모님과 그 앞에 서있는 초라한 나 자신이 자꾸 눈에 밟히고, 현실이 눈을 넘어 들어와 마음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볼이 훅 꺼진 어머니 얼굴 옆을 곁눈질로 몰래 보고있으면, 남들 다 보내는 학원 '다'는 못 보내주었지만 형편에 보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학원은 보내줬음에도 환경을 탓하며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노력하지도 않았던 나 자신이 보입니다. 


생선전 사이에 들어가 있는 어머니 머리카락을 보면,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일하러 나가면서도 아침 반찬하기 위해 아침 일찍 계란 사러 나가는 부모님과 그 옆에서 그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제가 보입니다. 매일 아침 고된 몸을 일으켜 아침 밥을 차리는 어머니도 그대로고, 고된 몸이라 일으키지 못하다 늦은 아침 먹을 때가 되서야 일어나는 저도 그대로입니다.


안방 안에 걸려 있는 겨울 옷을 보면, 유행 타서 안입겠다고 버린 패딩, 잠바들이 그대로 걸려 있음을 봅니다. 유행도 한 참 지난, 세월이 지나 바람도 푹 꺼진 패딩을 입고 너무 따뜻해서 내가 입고 다닌다는 엄마가, 너 덕분에 따뜻하게 다닌다고 말하는 엄마가 보입니다. 좋은 옷 한 벌 해드려야지 생각만 몇 년째 하다, 결국 잊어버린 내 자신이 보입니다.



엄마, 아침마다 나가 일하는 거. 그만 좀 해

하지만, 부모님 두 분을 먹일 수 있을 만큼 제 벌이가 되지 않습니다.


엄마, 일 끝나고 와서까지 밥하는 거 그만 좀 해

정작 저는 일하느라 힘들다고 청소 안 된 방에 누워 TV 리모콘만 만지고 있습니다.






딱 내가 어렸을 때 꿈꿨던 나 만큼만 되있더라면, 그 때 내 눈 앞에 아른거리던 어른의 모습이 지금의 나였다면 그만 좀 하라는 말을 시원하게 외칠 수 있을텐데. 그런 말 나올 상황이 되기 전에 이것 저것 많이 해드렸을텐데 하는 아쉬움만  이따금씩 올라옵니다. 어느정도 나이가 차니, 가슴부터 올라오는 슬픔의 종류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분간은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엄마를 보며 느끼는 슬픔은 내 자신에 대한 답답함입니다. 사회생활에서 얻은 뻔뻔함은 눈물샘도 딱딱하게 굳혔나 봅니다. 슬픔이 안에서 안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고만 있습니다.



코로나가 만들어 준 너무나도 싫은 기회를 통해 부모님과 저를 마주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늙은 모습으로 날 보고 있는 엄마를 보며, 내 자신에게 똑같은 말을 되내입니다. 자꾸 마주하는 일을 피하려 하지 말라고. 


그만 좀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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