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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스 노트

spice 04. Pieces of the moon

by LIFESPICE 김민희
04_스파이스노트_Pieces of the moon.jpg Pieces of the moon(2024)_Pencil drawing on paper 36X48cm

날이 맑고 달이 밝은 밤이면 우리 식구는 종종 베란다 창문을 확 열어젖힌다. 작업방 수납장 제일 높은 칸에 넣어둔 쌍안경을 꺼내어 삼각대에 고정하고 밝은 달을 향하도록 세운다. 동그란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 초점을 맞춘 후, 두 눈을 밀착시키면 렌즈 안에 차갑게 반짝이는 눈부신 달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내 짧은 글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마치 환하게 빛나는 둥근달을 입자가 곱고 반짝이는 별가루가 잔뜩 담긴 쟁반 위로 데굴데굴 굴려 묻혀둔 것 같달까? 차가운 은빛 입자들은 온기를 품은 태양빛을 받아 제 몸을 덥히고는 환한 빛을 뿜으며 저마다 반짝이곤 한다. 그렇게 달은 언제나 밤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매일 밤 모습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주인공. 달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야간작업만의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해서인지 달은 내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모티프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그림 역시 달이 주인공인 나의 그림 중 하나인데, 제목은 'Pieces of the moon'이다. 얄쌍한 빛을 발하던 달이 서서히 차 올라 둥그렇게 꽉 찬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조금씩 모습을 바꾸는 그 과정을 내 식대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달을 환하게 빛을 내는 4호짜리 둥그런 케이크처럼 하늘에 놓아보았다. 환하게 빛을 내는 진열장의 예쁜 케이크처럼 말이다. 달은 정해진 밤의 시간에 따라 달빛의 조각들을 한 조각, 한 조각씩 너른 들판 위에 조용히 떨구고 있다. 페프리카는 그 빛의 정체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로 떠나는 길을 밝히는 것인지 손전등을 손에 쥐고 부지런히 들판을 비추며 걸어가고 있다. 페프리카의 걸음을 따라 흔들리는 손전등 빛의 끝에는 조용히 부는 바람결을 따라 들판이 춤을 추고 있다. 밤 새 그 길을 걷다 보면 어쩌면 들판 어딘가에서 저 환한 달 조각을 하나쯤은 만날 것도 같다. 그럼 페프리카는 차갑고 눈부신 달의 조각을 조금 떼내어 호호 불어 털어낸 다음, 가방 속 안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어둘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잠이 안 오는 어느 밤엔가는 주머니 속 넣어둔 작은달 조각을 꺼내어, 어두운 방의 침대 옆이나 혹은 한밤중 까만 작업실의 책상을 밝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쌍안경을 통해 보인 달을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

겨울은 비록 날은 춥지만, 대기가 맑아 달과 별을 구경하기엔 제일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영 추위에 약한 편이라 이 계절엔 도무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이 글을 써보며 결심하건대, 그냥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겨울의 밤하늘 아닌가! 오늘 밤에라도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베란다 창문을 용기 내어 열어보아야겠다. 그럼 오늘 밤에도 달이 은색 빛을 뽐내며,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분명 쌍안경에 갖다 댄 두 눈동자에 오늘도 눈부신 달이 환하게 내려앉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달빛 한 조각을 두 눈에 담아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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