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
7월의 시작이 산뜻합니다. 밤새 따라다니던 열기는 새벽비에 기세가 누구러져 있습니다. 꽃잎에 맺힌 빗방울이 아침을 정화시키며 맑게 빛납니다. 여름 한낮의 절정이 시작되기 전 대기의 고요함이 평화롭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한 지 100여 일이 돼 갑니다. 운전대를 놓은 순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휴식의 첫걸음은 아파트 일층 화단에서 시작됩니다. 아직 만난 적 없는 부지런한 식물 집사의 작품은 나날이 새롭습니다. 꽃봉오리가 길고 우하한 나리꽃, 핑크로즈의 낭만적인 미소, 보라색이 단아한 도라지꽃과 작은 잎들이 함께 어우러진 수국은 서로 다른 개성으로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나이도 모른 채 무성히 자라 있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아침 햇살의 반짝임이 싱그럽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의 산책길은 무척이나 짧습니다. 더 많은 꽃을 보고 싶고 더 많은 나무향을 맡으려 애쓰는 것도 욕심이려나! 나 자신에게 끝없는 도덕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내 안의 나에게 오늘은 가벼운 일탈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벤치에 제법 노년의 정점을 향해가는 남자가 앉아있습니다. 멀리 여행을 떠날듯한 큰 짐도 아니고, 그냥 무관심하게 방치해 둔 작은 짐들이 어쩐지 목적지 없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지나가는 버스에 관심이 없어 보이고, 다음 버스의 대기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타는 버스가 방금 지나갔음을 전광판은 ‘종착지‘라는 단어로 명시해 주고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오히려 나에겐 반가운 덤입니다. 아직 다음 버스가 오기 전 12분이나 되는 자유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목적지가 없는 노신사와 목적지와 다소 멀어진 여유를 누리는 나는 그렇게 벤치를 점령하고 새로운 아침의 안식을 안은 듯 시간을 붙들고 있습니다.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간 뒤 버스 계단을 간신히 내려오는 낯선 할머니가 보입니다. 백발 할머니의 한걸음 한걸음이 위태위태합니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운전기사에서 연신 말을 걸고 있습니다. 기사는 '거기 안 가요'라고 외치며 할머니가 빨리 내리길 재촉합니다. 할머니의 아슬아슬한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됩니다. 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길을 찾는 듯합니다. 어디를 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떤 절박한 사연이 이 노인을 낯선 거리로 무작정 혼자 나서게 했을까? 이타심인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인 책임감의 발로인가. 연약하고 문명에서 고립된 노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새로운 용기를 찾아냅니다. 버스 정류장의 낯선 이들 사이에 자리 잡은 침묵을 깨고 나는 제법 큰소리로 묻습니다. '어디로 가세요? 어디 가시려고 하세요?' 할머니는 반가운 듯 큰소리로 말합니다. '남부 구치소...' 순간 내 머릿속의 내비게이션이 정지하고 맙니다. 흔히 듣는 지역명이나 건물명이 아닌 구치소라는 단어는 왜 이리 낯설게 들리는 걸일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내가 그 구치소 가는 길을 모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할머니도 이미 내 표정에서 내가 그 구치소 가는 길을 모른다고 확신한 듯합니다. 노인은 내 주위의 사람들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보면서 남부 구치소라고 여전히 큰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내 머릿속 뇌세포들은 남부 구치소 가는 길보다 그 아들은 왜 구치소에 간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오랜 세월 아들과 함께 한 노인의 긴 세월이 무겁게만 그려집니다. 분명히 장성한 아들일 것이라는 단정은 어디에 나왔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허리 구부정한 노인의 구치소 방문이 새로운 시련의 시작처럼 느껴집니다. 노인의 이 초행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나의 의도와 다르게 노인은 이미 다른 누군가의 길안내를 받으며 내 눈앞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저 길 건너 사거리에서 몇 번 버스를 타고 내려서 다시 다른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젊은이는 열심히 설명하며 자신의 목적지로 가는 버스에 오르고 있습니다. 노인은 과연 오늘 언제쯤이나 아들에게 도착할 수 있을까.? 아들에게 가는 아침 여정이 순탄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