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가의 100년간 축적된 고서, 예술 작품의 보고
부자가 문화와 만난다면?
뉴욕은 문화 관련 콘텐츠뿐 아니라 월스트릿, 주식, 금융, 부자... 등 '돈'과 관련된 자본주의의 핵심 기제들이 동시에 떠오르는 곳이다.
세계적인 부를 소유한 이들 중에는 다양한 문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과시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며, 동시에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담보해 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모건 라이브러리 겸 박물관(The Morgan Library & Museum)은 ‘부’와 ‘문화’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100살이 훌쩍 넘은 이곳은 금융 전문가 J.P. 모건의 개인 도서관이었다.
J.P. 모건은 1890년대부터 고문서, 초기 인쇄본, 고전 미술 작품 등 당대 희귀서 및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902년, 맨해튼 36번가와 매디슨 애비뉴가 만나는 곳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을 지어 개인 사무실 겸 도서관으로 사용해 왔다고 한다. 1913년 모건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J.P. 모건 주니어가 부친의 유지에 따라 1924년에 일반인에게 공개하게 된다.
현재는 고서, 각종 원서, 예술 작품등 방대한 자료를 소장한 박물관이자 독립 연구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맨해튼의 오후 거리는 여전히 분주하고 활기가 넘친다. 바쁜 걸음을 내딛는 다양한 뉴요커들과 보폭을 맞추며 39번가를 따라 메이디슨 애버뉴를 향해 걷는다. 오늘의 목적지는 모건 도서관이다. 20분 정도 걸어가니 빨강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The Morgan Library & Museum" 간판이 멀리서부터 한눈에 들어온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모던 스타일의 대형 홀이 보인다. 통유리로 둘러싸인 깔끔한 카페에 앉아 애프터눈 티 메뉴를 즐기며 관람 순서를 정해 본다.
모건 도서관은 일반인에게 공개된 이후 여러 차례 확장 및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1928년 모건의 도서관에 새로운 건물, 애넥스(Annex)를 추가해 연구 공간 및 전시 공간을 확장했고, 1988년에는 모건 주니어가 살던 37번가의 브라운스톤을 도서관에 편입시켰다. 2006년,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한 유리와 강철로 된 현대적인 파빌리온이 추가되면서 현재의 외형을 완성했다.
본 박물관에는 6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 조명 필사본(illuminated manuscripts)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모건 성경(Morgan Bible)', '모건 비아투스(Morgan Beatus)', '캐서린의 시간(Hours of Catherine of Cleves)'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에드거 앨런 포의 '누더기 산의 이야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세 개의 이야기와 열 편의 시' 등 문학 거장들의 원고가 소장돼 있다.
이밖에 한스 멘링, 페루지노,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등의 구스타비안 마스터 작품과 13~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의 드로잉 및 수채화 약 12,000점 등의 미술작품까지 약 35만 점 이상의 보고가 이곳에 있다고 하니 그 자료의 방대함이 여느 대형 박물관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특히 올해 초부터 5월 말까지 중세시대 책들을 전시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와 알렉산더 대왕 같은 유명 여행가의 서적부터 플리니우스와 이시도르의 고대 백과사전까지 중세 시대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때마침 이번 방문 시점에 <프란츠 카프카의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마치 일부러 카프카를 만나기 위해 오늘 이곳을 방문한 것 같았다. 이런 뜻밖의 행운을 마주할 때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곤 한다.
유리로 된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 위로 올라가 체코를 대표하는 천재 작가 '카프카 특별전' 사인을 따라 걷는다. 빨간 바탕에 그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대형 포스터가 보인다. 어릴 적 읽었던 충격적 반전 소설 <변신> 작가의 세계관으로 입장한다.
이번 전시는 옥스퍼드 대학교 보들리안 도서관(Bodleian Libraries)과 협력하여 지난해 11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특별 전시회였다.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체코 작가인 카프카의 초고 원고 및 일생에 관한 자료들 전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자필로 적어 내려간 <변신 The Metamorphosis>의 초고 원고를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그의 인생에 대해 새롭게 조명해 본다.
<미국 Amerika>, <성> 등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다양한 미완성의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접한다. 또 카프카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와 일기, 개인 노트, 가족사진 자필 그림 등 그의 생애와 창작 과정 전체를 알아간다. 그의 작품이 문학,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미친 영향과 '카프카적(Kafkaesque)'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카프카적'이란 표현은 억압되고 비논리적인 권위 구조에 의해 개인이 무기력화 되고 비인간적이 되어가며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라고….
카프카전을 끝으로 이곳 투어를 마무리한다. 문 닫을 시간이 다되어 아쉽게도 기프트샵은 못 들리고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2024년은 모건 도서관 및 박물관이 공공 기관으로서 100주년을 맞이한 의미 있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23년부터 5000만 달러 모금을 시작했는데 그중 3500만 달러는 기부금으로, 1500만 달러는 시설 개선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방대한 자료와 귀한 장서,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 머물다 나오니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 여행을 하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 카프카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값진 경험이 됐다. 모건 가문이 공개한 귀한 자료들 덕에 지역사회가 문화적으로 한층 풍성해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닐까.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매디슨 애비뉴에 보슬비가 내린다.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시켜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사회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본주의의 순기능이 아닐까?
뉴욕에 관한 지식사전 4.
뉴욕 거리에 비가 내린다. 오늘 저녁 식사는 Joe's Pizza로 정했다. 스파이더맨 2를 보면 스파이더맨이 피자를 배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등장한 곳이 바로 Joe's Pizza, 이 집이다.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정통 뉴욕 스타일 피자집으로, 1975년에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이민자 조 포추올리(Joe Pozzuoli)에 의해 설립됐고, 지금까지 창업주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얇은 크러스트에 치즈, 마게리타, 페퍼로니 등 다양한 토핑을 얹었으며 주로 조각 피자로 판매된다. 이 피자 집 앞에는 언제나 피자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스트릿 피자 맛집이다. 뉴욕에 오시면 꼭 한번 들려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