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과 특기 살려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라
“4년간 커리큘럼을 어떻게 짜야할까?”
실리콘밸리 키즈들은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입시를 향해 달리는 ‘고등학교’ 열차에 올라타게 된다. 이때부터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아이만의 '색깔'을 찾아 이를 극대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등학교(high school)를 다른 말로 대학 준비 학교(college preparatory school)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동시에 이 4년은 예비 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를 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SAT 만점 받는다고 무조건 하버드에 합격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예비 고등학교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미리부터 4년 교과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면 좋은지에 대한 특강이 열린다. 학교 입시 카운슬링 담당자는 아이들이 수능시험에서 고득점만 받는다고 절대 탑스쿨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날 특강에서 가장 많이 나온 용어는 '각 과목별 균등한(well balanced) 성적 유지'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 최고 수준의 과목 선택(rigorous system)', 그리고 '개인별 특징을 선명하게 하라'는 것이다.
즉 '가장 높은 수준의 과목을 이수'하고 동시에 '우수한 내신'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특기'로 성과를 내고,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사회공헌에도 기여해야 각 대학에서 원하는 '최고의 인재상'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헐... 이게 도대체 뭔 말이야?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하는 만능 인간을 원한다는 거네."
학교 강당을 빠져나오는 아이들과 학부모로부터 탄식이 흘러나왔다.
쥬쥬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이해해 보기 위해 아이 초등학교 때 함께 시청했던 <하이스쿨뮤지컬>을 다시 돌려본다. 미국 남녀 청소년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는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제와 다시 보니 드라마의 콘텐츠가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온다.
농구에 재능 있는 트로이와 공부를 잘하는 가브리엘이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 자신만의 색깔 있는 특기‘를 찾아 꿈을 키워나가는 성장 드라마였던 것이다.
입장이 바뀌면 해석도 달라진다.
중학교부터 단련된 자신만의 시간표 짜기가 이제 본격적인 실효성을 발휘할 때다. 고등학교 4년간의 밑그림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본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학년별 전술을 잘 수립해야만 성공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다.
9학년은 주로 아이들의 숨 고르기 시기이다. 중학교부터 시작된 핵심 과목들의 기초를 좀 더 확실히 다져나가야 한다. 만약 수학 단계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면 기초 지식에 미흡한 점이 없는지 확인해 가며 상급 레벨에 도전해 봐도 좋다.
리딩 실력을 키우기 위해 고등학교 필독 도서를 틈틈이 읽어두는 것도 필요하다. 과학 분야는 생물, 화학, 물리를 고루 듣되 더 집중할 과목은 대학 수준인 AP 단계까지 소화한다.
또 자신만의 특기를 확정하고 이 분야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한다.
10학년과 11학년 때는 무조건 좋은 내신을 유지하는데 염두를 두어야 할 때다. UC를 포함한 사립대학에서 이때부터의 성적과 얼마나 경쟁력 있는 과목을 선택했는지를 모두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9학년보다는 10학년과 11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더 상급 레벨을 수강하고 성적도 점점 더 좋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포츠, 음악, 미술 등 특기 종목을 정했으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성과 및 수상 실적을 만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10학년과 11학년 때는 많은 아이들이 교내 및 지역대회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전국 및 국제대회 수상을 향해 매진하는 때다.
이 시기는 아이들이 가장 바쁘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때이기 때문에 건강 관리 및 균형 있는 영양 섭취 또한 중요하다.
실리콘밸리 아이들의 하루 일과는 분 단위로 쪼개 생활한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바쁘다. 학교 수업이 0교시부터 시작해 7교시까지 있고, 거기에 교내 클럽 및 특기 활동을 마치면 어둑어둑해진다. 또 저녁 이후에는 각자 외부에서 활동하는 액티비티에 참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쥬쥬의 경우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있는 날이면 방과 후 이른 저녁을 먹고 리허설 장소로 이동, 저녁 6시 30분부터 저녁 9시 30분까지 연습을 한다. 집에 돌아오면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엄청난 분량의 학교 숙제에 들어갔다. 쿠퍼티노 지역 학교들은 학교 수업 중심의 교육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및 공부량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 숙제 및 각종 프로젝트 과제로 밤을 지새우는 아이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는 또 각종 특별 활동 및 발런티어, 각종 컴피티션들이 줄줄이 잡혀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아이들이 진심으로 좋아서 하는 활동이 아니면 번아웃이 오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학부모들끼리 모이면 "마치 연예인 일정을 관리하는 것 같다"는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로 학부모들의 구글 캘린더가 아이들 스케줄 관리를 위해 오색 칼라로 꽉 차 있었다. 실리콘밸리에는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활동=학부모의 차량 라이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또 12학년이 되기 전에 수학능력평가 점수를 따야 한다. 미국 수학능력평가인 SAT나 ACT는 우리나라처럼 모든 학생들이 한날한시에 다 같이 치르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4년 기간 중 각자가 준비됐을 때 개별적으로 점수를 따놓도록 하고 있다. 보통은 11학년 때까지 이수해야 하는 고등학교 필수 과목을 다 수강한 후 시험에 응시해야 기대한 점수를 얻을 수 있다.
SAT와 ACT 중 어느 쪽이 좋을지는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므로 아이 특성에 맞춰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본격적인 수능 테스트에 앞서 11학년 아이들의 준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PSAT라는 전국 테스트를 다 같이 치른다. 이 성적을 기준으로 우수 학생에게 대학 진학 시 장학금 혜택 및 몇몇 대학의 수시 지원자 선정에 참고하기도 한다. 따라서 PSAT 일정에 맞춰 SAT 점수도 따는 것이 좋다. 물론 그전에 모든 점수를 다 따고 느긋하게 11학년을 맞이하는 아이도 있다. 어쨌든 11학년은 고등학교 시기의 가장 혹독한 '수험생'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학년은 지난 3년간의 성과물을 갈무리하는 때다. 꾸준히 내신을 유지하며 대학 입학원서에 집중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4년이 온통 대학입시 준비로만 가득 차 있지는 않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댄스파티가 매 학기마다 열려 아이들의 입시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구를 만들어 준다.
실리콘밸리 키즈들은 중학교 때부터 매년 학교에서 주최하는 '댄스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보통 학교 체육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신나게 춤추고 놀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다.
고등학교 때의 댄스파티는 중학교 보다 좀 더 파티다운 모습을 갖춰나간다. '윈터포멀', '주니어 포멀' 등 매 학기마다 다른 테마가 있다. 이는 학생들 간의 건강한 소통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학교에서 기획한 행사이다.
쥬쥬도 10학년 어느 날 장미꽃을 한 다발 받아 집에 가져왔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선생님이 쥬쥬 이름을 불러 나갔더니 갑자기 노래가 흘러나오고 한 남자아이가 꽃다발을 들고 나와 "Winter formal with me?"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다 같이 협동해서 즐거운 프러포즈 이벤트를 기획할 정도로 실리콘밸리 키즈들에게 댄스파티는 건전한 놀이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특히 12학년 '시니어 프롬(Senior Promenade)'은 모든 댄스파티의 종결판이다. 입시가 모두 끝나고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멋진 턱시도와 최고의 드레스를 챙겨 입고 그동안의 모든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버린다.
열심히 살아오던 실리콘밸리 키즈들도 이때만은 영락없는 아이들로 변모한다. 자신의 프롬 파트너를 찾기 위해 창의적인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고, 프롬 파트너와 드레스 코드를 맞추며,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파티를 즐긴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호화 유람선을 전세내고 고급진 뷔페를 차려준다. 졸업을 앞두고 곧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될 아이들을 위해 어른 흉내를 내며 신나게 선상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기 아이들이 성인으로 가기 전 즐거운 추억을 만든다. 또 책임감 있는 태도를 배우고, 자신감을 고취시켜 건강한 성인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독려한다.
일 년에 한 번씩 학교는 물론, 주변 동네까지 떠들썩한 대규모 행사가 있다. 바로 '홈커밍 주간'이다. 이 행사는 미식축구 홈경기에 맞춰 그 주간에 퍼레이드 및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홈커밍 퍼레이드는 학생은 물론 교사와 동문들이 모두 참여하는 행사다. 매해 특징 있는 캐릭터 및 주제를 정하고 다양한 스킷 공연 및 댄스 공연 등이 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진다. 학교 임원들(ASB leaders)을 중심으로 특색 있는 홈커밍 행사를 기획하는데, 행사 주간에는 밤새 한 곳에 모여 이 거대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쓴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리더십과 협동심을 키워나간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고등학교 교과과정보다 더 높은 단계를 미리 수강하기 원하는 아이들은 11학년부터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 및 온라인 클래스 등을 통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수학 AP 캘큘러스 B/C단계를 다 끝냈는데 그다음 단계인 D를 가고 싶다면 주변 대학에서 그 과목을 이수하고 추후 대학원서 낼 때 그 성적표도 함께 첨부해 제출하면 된다.
또 학교에 개설되어 있지 않은 '컴퓨터사이언스'나 '회계', '미술사' 등 여타 과목을 수강하고 싶은 경우도 마찬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미국 대학들은 자신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특정 과목을 심도 있게 깊게 판 아이들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만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하고 싶은 아이들은 추가 크레딧을 따놓기도 한다.
* 다음 호에는 <미국대학교: 아이와 헤어질 시간>에 대한 내용으로 대학 선택 과정 및 고등학교 졸업식과 대학 입학식 등에 대해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