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절 현지인처럼 즐기는 방법
실리콘밸리에서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해외살이를 하면 할수록 '명절'에 대한 향수가 더 짙어진다. 솔직히 한국에 있을 때는 명절이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은 달갑지 않은 날이었다. 하지만 타향살이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명절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이곳의 명절도 그 의미를 찾으며 함께 즐기게 된 것 같다. 미국인들에게도 명절은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문화,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 있는 행사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 독립기념일 등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4대 명절에 대해 정리해 봤다.
이번 땡스기빙데이 때는 우리 집에서 모여요.
실리콘밸리 주민으로서의 햇수가 한 해 한 해 늘어날수록 이곳 명절맞이도 점차 익숙해져 간다.
추수감사절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라 보통 그 전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전 국민이 연휴에 들어간다. 땡스기빙 주말을 앞둔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다가올 장기 연휴에 앞서 만나는 사람마다 "Happy Thanksgiving"하고 인사를 주고받으며 명절을 맞이한다.
땡스기빙 연휴에는 이곳에서도 전 국민이 고향집을 찾아 회귀하는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우리나라 추석이나 설 명절을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경기침체로 당일날 문을 여는 몇몇 상점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이 날만은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가족 파티를 갖는다.
따라서 연휴 하루 전날부터 거리의 교통체증이 무척 심하다. 특히 타 주에 있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뵙기 위해 국내선 항공을 많이 이용하다 보니 공항 주변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항공료가 연중 최고치를 찍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실리콘밸리에 도착해 맞이한 첫 미국 명절이 바로 추수감사절이었다. 그때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해 5일 연휴 맞이 장거리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거리 정체는 예상했으나 땡스기빙날에는 어떠한 상점도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아직 현지 적응도 다 끝나지 않았고, 지금처럼 배달앱이 활성화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아뿔싸!' 우리 가족은 그 해 추수감사절날 하루 종일 쫄쫄 굶었다.
"When in Rome, do as Romans do"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이듬해부터는 여행보다는 이 나라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명절을 집에서 제대로 즐기자'로 콘셉트를 바꿨다.
"올해는 터키 가격이 더 비싸졌나 봐?"
우리나라 명절이 되면 사과와 배 가격이 얼마인지 확인하듯 여기서는 터키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올랐는지 비교하는 뉴스를 이 무렵이면 쉽게 들을 수 있다. 추수감사절을 다른 말로 '터키 데이(Turkey Day)'라고 부를 정도로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칠면조 구이다.
추수감사절에는 여럿이 한데 모여 홈파티를 즐기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딱히 찾을 고향이 없는 우리 같은 이민자들은 이 날 주로 지인들과 함께 포트락(potluck) 파티를 즐긴다.
그동안 눈동냥만 하다가 올해는 우리 집에서 파티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우리나라 설날에 떡국이 있듯이 추수감사절에 먹는 특별식들이 몇 가지 있다. 호기롭게 터키구이를 직접 해보겠다고 여기저기 터키 가격을 비교하다가 결국 홀푸드에 '터키디너세트' 프리오더를 했다. 이제 터키는 하루 전날 픽업해서 오븐에 데우기만 하면 된다. 이 패키지에는 터키와 함께 곁들이는 각종 요리들 - 호박파이, 매시드 포테이토, 옥수수 빵, 크랜베리소스, 그린빈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대신 이런 메인 요리들에 덧붙여 녹두전, 김치, 나물 등 우리나라 음식 몇 가지를 추가하기로 한다.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녹두전을 해외살이 하며 친정엄마께 레시피를 전수받아 시도해 보고 있다.
해외살이를 하면 누구나 '셰프'가 된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 이민자들이 원주민들로부터 재배 방법을 배우고, 그 이듬해 수확한 첫 작물을 원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때문에 이 명절은 감사와 인내, 희망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온 가족이 한데 모여 파티를 즐기고, 어려운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는 것이 전통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한 해 마무리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12월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가정과 기업 모두 한 해 동안 벌여놓은 일들을 하나씩 마무리하고 내년도 계획을 짜는 시기이기도 하다.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 세일
땡스기빙 저녁이면 각 백화점에서 대규모 세일이 시작된다. 일명 '블랙프라이데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금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이 되면 백화점들이 대규모 세일을 시작한다.
이때는 많은 인파가 자정 전부터 오픈런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사전에 쇼핑 목록을 정해놓고 계획적인 쇼핑을 권장한다. 주로 이사를 앞두고 가전제품을 저렴하게 득템 하거나 평소에 사고 싶었던 명품을 장만하기에 좋은 때이다.
Merry Christmas!
크리스마스 주간이 되면 초등학교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합창단을 꾸려 저녁 시간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캐럴을 부른다.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의 반 아이들도 크리스마스 콰이어를 조직해 조별로 학교 주변 가정들을 가가호호 방문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미리 5-6곡의 캐럴송을 연습하고 각자의 구역을 배정받았다.
겨울이면 유독 빨리 어두워지는 실리콘밸리의 저녁시간,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God Bless You, Merry Gentlemen!" 챨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생각났다. 스크루지 영감 집 앞에서 아이들이 캐럴 부르는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크리스마스는 명실공히 미국 최대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추수감사절을 지나면 마을이나 거리 곳곳이 할로윈 장식에서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탈바꿈한다.
'산타나로(Santana Row)'라는 대규모 쇼핑거리 주변에는 12월 첫 주 무렵 대형 트리를 꾸며놓고 점등식 즉, 'Tree Lighting' 행사를 갖는다. 이때는 여러 학교 및 각종 지역 단체들이 음악 연주 및 공연을 준비해 곳곳에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크리스마스 때마다 'Vasona Park'에는 'Fantasy of Lights'라는 이벤트가 열린다. 대규모 공원 곳곳에 아름다움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며놓고 크리스마스 노래 전용 라디오 주파수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송을 들으며 자동차로 공원을 순환하는 행사다. 동네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이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연중 최고의 명절이자 한 해를 정리하는 긴 휴가 기간이다. 많은 기업들이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한해 업무를 정리하고, 직장인들은 미뤄온 휴가를 이때 몰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일부 회사는 일주일 전부터 회사 전체 업무를 종료하고 새해가 될 때까지 휴가에 돌입하기도 한다. 쇼핑몰과 백화점은 클리어런스 세일에 들어가고, 주식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이 크리스마스 휴가 전 수익을 실현하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 주가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크리스마스랠리'가 일어나기도 한다.
천주교 집안인 우리 집은 부활절이면 엄마가 삶아주신 계란에 하나하나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알록달록 예쁘게 장식한 계란을 엄마는 두세 개씩 정성껏 포장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와서 맞은 부활절은 단순히 종교인들의 행사가 아니라 전 국민의 명절이었다.
부활절 주간을 맞은 실리콘밸리는 부활절을 상징하는 '달걀', '토끼', '초콜릿' 등으로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장식되고 '새 봄'을 알리는 각종 행사와 맞물려 다양한 축제가 펼쳐진다.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는 '새 생명'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초콜릿은 '기쁨'과 '축복'을 상징한다고...
실리콘밸리에서 부활절을 즐기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에그헌팅'이다. 성당이나 교회등 주로 종교단체 중심으로 많은 행사가 있지만 아이들 학교에서도 부활절 주간은 축제 기간이다.
'에그헌팅'날에는 학교 곳곳에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계란에 작은 보물을 넣고 운동장 곳곳에 숨겨둔 후 찾기에 나선다. 아이들은 그 안에 들은 사탕, 초콜릿, 과자 등 맛있는 보물들을 얻기 위해 놀이에 적극 참여한다.
사람들 몰리기 전에 얼른 캠핑 의자 챙겨서 나가자. 피자 한판 시키고...
독립기념일 오후가 되면 우리 가족은 집 근처 공원으로 먹을 것을 챙겨 나간다. 쿠퍼티노에서 불꽃놀이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오후 6시 무렵이면 이미 명당자리는 다 빼앗기고 만다.
올리버스톤 감독의 '7월 4일생(Born on the Fourth of July)' 영화로만 알고 있던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해외살이 몇 년 만에 우리 가족에게 '불꽃놀이를 보며 야외피크닉을 즐기는 날'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이날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Happy Fourth of July!"하고 인사 나눈다.
독립기념일에는 유독 지글지글 바비큐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한다. 한여름의 태양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캘리포니아 여름맞이 행사 중 하나로 가족들이나 친구들끼리 집 뒷마당이나 공원에 모여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날로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불꽃놀이, Fireworks'다. 독립기념일 밤 9시 무렵이 되면 곳곳에서 펑펑 터지는 불꽃놀이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미국의 독립에 대한 자부심과 영웅심을 드러내는 귀에 익은 노래들이 울려 퍼지며, 1시간가량의 화려한 불꽃놀이 행사가 펼쳐진다.
우리 가족은 피자와 음료수, 과자등 피크닉 음식들을 공원 잔디밭에 펼쳐놓고 불꽃놀이가 시작할 때까지 여유 있는 피크닉을 즐긴다. 주로 가족 단위로 나와있어 아이들은 주변 놀이터에서 뛰어놀거나 친구들과 만나 축제 분위기를 즐기기도 한다. 공원 입구에서는 미국 애국심을 고취시킬만한 각종 기념품인 국기, 목걸이, 야광 조명 등을 무료로 나눠주며 흥을 돋운다.
<산호세 주변>
Memorial Park, Santa Clara City Beach Park, Santa Clara County Fairgrounds
<샌프란시스코 주변>
Crissy Field, Candlestick Park, Pier 39, Alcatraz Island
1. 봄이 언제 오나요? -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 2월 2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미국에는 '그라운드호그데이'가 있다. 매년 2월 2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날은 미국의 명절이나 공식 휴일은 아니지만 그라운드호그가 겨울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를 예언하는 전통 행사가 열린다.
2. 사랑을 표현해요 - '밸런타인데이': 2월 14일
매년 2월 14일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밸런타인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날이 연인 간의 사랑고백을 하는 날이라면 미국에서는 가족과 친구 누구에게나 사랑과 우정을 표현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밸런타인데이에는 학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 또 거리 및 상점 어디서나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Happy Valentine's Day"를 외친다.
3. 전국이 초록색으로 물든다 - 'St. Patrick's Day': 3월 17일
미국 전역을 초록색으로 뒤덮는 날이 바로 3월 17일 세인트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이다. 이 날은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에 이민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세인트 패트릭의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열고 초록색 옷을 입고 파티를 즐기며, 맥주와 아일랜드 음식을 맛본다. 또한 아일랜드의 국기인 초록색을 상징하는 클로버(Shamrock) 장식품을 주고받는다.
4. 부모님이 최고 - Mother's day / Father's day : 5월 두 번째 일요일/6월 세 번째 일요일
미국에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날이 있다. 매년 5월 두 번째 일요일이 어머니의 날, 6월 세 번째 일요일이 아버지의 날이다. 미국 아이들은 왠지 '효도'와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나라가 넓고 사는 지역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쩌면 특별한 날에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더 깊은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날이면 아이들이 엄마 대신 요리를 해서 깜짝 파티를 해주거나 다 같이 외식을 하며 가사 부담을 줄여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멀리 있는 자식들도 이날만은 부모님께 안부인사를 여쭙고 찾아뵙기 위해 애쓴다. 아버지의 날은 솔직히 어머니의 날처럼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선물이나 여행 등으로 표시한다.
5. Trick or Treat - '할로윈': 10월 31일
추수감사절에 앞서 10월 31일 '할로윈데이 halloween day'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날은 명절이라기보다는 오래된 풍속으로 아이들은 재미있는 코스튬을 갖춰 입고 학교에 등교한다. 초등학교에서는 펌킨 페스티벌을 열고 다양한 게임과 음식을 제공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갖는다. 할로윈을 앞두고 각 동네에는 '펌킨 패치'라고 호박을 구매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잘 익은 호박을 좋은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거리다. 이 호박으로 Jack-o-Lantern을 만들어 할로윈 장식을 한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부모님의 보호하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트릭오아트릿(Trick or Treat)'을 외치고 다닌다. 각 가정에서는 각종 초콜릿과 캔디, 때로는 아이들이 기억할만한 작은 선물을 준비해 놓고 할로윈 방문객들을 맞이하며 함께 즐긴다.
다음호는 <테크 없는 실리콘밸리 대자연을 여행하다>란 주제로 실리콘밸리 주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