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나무를 키우며
"이 안에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 줄 아니? 아보카도야. "
2년 전 귀국 이사 후 친정 엄마는 내 허리까지 오는 대형 도기 화분을 선물로 주시며 탄생비화를 털어놓으신다.
"아보카도를 먹고 씨를 화분에 던져놨는데 글쎄 싹이 나왔지 뭐니? 기대도 안 했는데 꼬물꼬물 새싹이 올라오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 너희 귀국에 맞춰 싹이 튼걸 보니 앞으로 운수대통하려나 보다"라고 덕담까지 얹어 주신다.
아직 자리도 안 잡혔는데 이 와중에 내가 과연 식물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화분을 주시는 거라 거절하기 뭐 해 일단 집에 데려왔다.
엄마의 지시대로 베란다 창문 앞 해가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둔다.
화분 크기에 비해 식물의 키가 너무 작아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커다란 빈 화분을 하나 갖다 놨나 싶을 정도로 아직은 볼품이 없다. 이 녀석이 제대로 자라려면 아래로 뿌리를 충분히 내릴 수 있는 깊은 화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겨울철이 다가오고 있어 두툼한 뽁뽁이로 화분 바깥을 꽁꽁 싸매준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 공기를 순환시키고, 가끔씩 영양제도 골고루 뿌려준다. 그리고 흙의 표면이 흠뻑 젖을 때까지 물을 준다.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전혀 다른 직업군을 선택한 후 아무도 내가 식물 키우기에 관심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식물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은 빛, 공기, 물, 양분, 그리고 적절한 온도라는 것. 서당개 3년, 아니 4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여기 해당되려나?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왔다. 좀처럼 열지 않던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집 안으로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게 한다.
베란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초록색 화분에 무언가 보인다. 처음 올 때 5 cm 미만이라 잘 보이지도 않던 꼬마 아보카도가 어느새 10 cm 이상으로 성장해 있다.
겨우내 힘든 시기를 버티고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옮겨가며 아보카도 나무의 성장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졌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아보카도는 오히려 제 철을 만난 듯 쑥쑥 자라난다. 이제 아보카도 나무라고 주장해도 될 만큼 형태가 갖춰져 도기 화분 본새에 어울리기 시작했다.
줄기도 제법 굵어지고 잎도 큼직해졌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그 속에서 또 다른 움이 트고 있다는 거다.
아보카도 키우기에 발을 디디니 불현듯 인간이나 식물이나 한 생명체를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식물이 잘 자라려면 비옥한 토양이 필요하듯 인간도 건강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아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식물에게 물이 필수라면 인간에게도 사랑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 또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식물처럼 올바른 교육과 경험치가 인간의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아보카도가 성장해 열매를 맺기까지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과 노력, 그리고 결실..., 이것 역시 우리 인생과 오버랩되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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