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 고전의 힘

문장에 인생의 답이 있다

by 열음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대학 4학년 무렵, 고전 서적들을 벗 삼아 잠시 현실 탈출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과연 내가 앞으로 뭘 하고 싶은 지, 대학 4년 내내 도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혼란스러웠다. 친구나 선배들과의 상담과 조언도 근본적인 고민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현듯 초등학생 때 세계 명작 전집으로 접했던 고전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통 크게 사주신 수십 권의 문고판이 우리 방 한 면 8단 대형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집을 먼저 완독 한 사람에게 주겠다는 아빠의 '상품' 배틀은 언니와 나의 독서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 때 무작정 읽어내렸던 그 명작들을 대학생이 된 지금껏 한 번도 다시 들춰본 적이 없었다는 게 어쩌면 신기하기도 했다.




학교 도서관에 들러 헤르만 헤세,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어릴 때 읽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있는 대로 쓸어 담았다. 책가방 하나 가득 색이 바랜 고전 책들을 담아 올 때의 뿌듯함이란….


이 전략은 주효했다. 밤새워 책을 읽고 감명 깊은 구절을 받아 적는 동안 복잡하던 머리가 차분하게 정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각 고전에 담겨있던 주옥같은 문장 하나하나가 나를 토닥토닥 다독이며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싯다르타의 여정에 편승해 그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맥베스의 인생 허무함에 동감했으며, 라스콜니코프의 양심과 신념의 갈등을 함께 겪어도 보기도 했다.


이들 모두 책 속에 들어있는 잔잔하고 질퍽한, 때론 뾰족한 문장들을 통해 배운 인생 수업이었다.


책 속의 문장 한 줄 한 줄은 작가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문장이 때론 사람들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며, 역사를 기록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스테디셀러인 고전물들이 내 삶의 지표가 됐던 것처럼 문장의 힘은 시대를 초월한다. 인쇄된 활자 대신 모바일 플랫폼이 대세인 요즘이지만 어떤 형태의 문장이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능엔 변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분기점에 있을 무렵, 내게 가장 와닿았던 문장은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 미련, 아쉬움을 나를 대신해 표현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길을 잃거나 헷갈려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 생각을 확실하게 자리 잡아 주는 것, 바로 고전 속 문장의 힘이 아닐까.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중> 매거진은 매일매일 저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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