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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 달리기 준비

준비 단계의 쫄깃함을 즐기자

by 열음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만국기가 펄럭이고 청군과 백군 양 팀으로 나뉘어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친다. 지금은 아련한 초등학교 운동회 때 추억이다. 이때 절대 빠지지 않는 종목이 바로 달리기다. 공기총을 손에 쥔 선생님이 하늘 높이 팔을 올린 채 "준비! 땅!!"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출발선에 서있던 아이들은 앞다퉈 목표점을 향해 전력질주를 한다.


나는 어릴 적 달리기 종목을 가장 싫어했다. 달리기를 태생적으로 잘하지도 못했지만 달리기를 준비하기 위해 출발선에 대기하는 순간이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승점을 응시하며 초집중 상태로 언제 '땅' 소리가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던 순간... 내 심장은 출발하기도 전에 미리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 무시무시했던 달리기는 결승점 도착 순서에 따라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가 매겨진다. 이 순간 누구는 성취감을, 누구는 끝났다는 안도감을, 누구는 다음에 더 잘해야겠다는 도전정신을 얻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달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목표를 세우고, 그 지점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 달리기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달리기를 그리도 싫어하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 느꼈던 그 쫄깃쫄깃한 긴장감을 즐기게 됐다. 목표가 정해지고 그를 향해 준비하며 느끼는 희열이 두려움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결과보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일까?




홍보대행사에 잠시 몸담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크고 작은 클라이언트 비딩을 준비해야 했다. 프레젠테이션 일정이 잡히면 계약을 따기 위한 철저한 준비에 들어간다.


클라이언트의 가려운 부분을 파악하고 그에 필요한 자료를 조사한다. 또 이에 대한 전략을 짜고, 구체적 전술을 마련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준비한 내용을 가장 멋지게 포장해 클라이언트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만 비딩에서 최종 낙점된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목표한 어젠다를 향해 집중력과 투지를 불살라 전력질주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결과는 냉혹하다. 프로젝트의 승자인 1위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달리기에서 결승점에 제일 처음 도착한 선수만이 결승테이프를 끊을 수 있는 것처럼.... 프로젝트를 수주할 경우 성취감을 갖게 되지만, 설사 낙점되지 않더라도 준비과정에서 얻은 각종 지식과 경험치가 쌓이고 또 다른 목표점을 세우게 된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준비 단계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다. 목표를 향해 준비할 때의 적당한 긴장감과 그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모여 성취감, 안도감, 그리고 새로운 도전 의지를 모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달리기는 계속된다. 새로운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기 위한 준비를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오늘도 파이팅!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중> 매거진은 매일매일 저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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