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질환 환자는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 보니 3일이 지났다. 정신도 나름 괜찮아졌다.
그제야 스스로 상태를 살펴볼 수 있었다.
복강경과 절개 수술을 했다. 작은 구멍을 뚫고 진행하는 수술이다.
염증으로 뒤덮인 부분과 구멍이 생긴 소장의 크기가 꽤 컸다고 한다.
그 부분을 잘라낸 후 꺼내기 위해 내 배를 4~5cm 정도 절개 했다.
절개 길이가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실제 고통은 어마무시하다.
잘라낸 소장으로 크론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크론병은 희귀병이고 불치병이며,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라고 말씀하셨다.
진단을 받고 나는 슬픔보다는 평온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나 걸릴 수 없는 병을 내가 진단받았으니 내가 좀 특별한 사람인가?”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꽤 낙천적인 사람인 것 같다.
수술이 끝나고 3일 정도 지난 후 담당의 선생님이 걷는 연습을 시켰다.
하지만 나에겐 걷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래서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는 연습을 했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조금 움직여도 상당히 아팠기 때문이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앉을 수 있었고 천천히 침대 바깥으로 내 다리를 내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첫걸음이었다.
억지로 걸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정말 억지로 걸었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견뎌야만 했다. 주저앉는 것도 큰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병동 문 앞까지 다녀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 밖을 벗어나 혼자서 입원 병동을 한 바퀴 돌았다.
그 당시는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이라 면회가 자유로웠다.
그래서 친구들이 면회를 왔다.
거의 2개월을 굶었기에 나는 전과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씻지 못해 까치집 머리와 마른 몸뿐이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며 추억으로 그때 이야기를 하면 안타까워한다.
가족들과 친구들 덕분에 고통을 잘 견딜 수 있었다.
혼자서 잘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담당의 선생님이 퇴원을 이야기했다.
거의 두 달 동안 함께 했던 링거 주사를 뺐다. 아쉬움은 하나도 없었다.
그 쾌감과 시원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크론병 주의사항들과 수술 관련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리고 먹어야 할 약들에 대해서도 설명받았다.
19년 12월 31일에 드디어 퇴원했다.
그리고 집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집에서 푹신한 침대에 누워 부드러운 이불을 덮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나의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함을 배웠고
수술을 하고 걷는 연습을 하면서 평범한 생활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렇게 나의 크론병 희귀 질환 환자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