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의 향은 은근히 좋다.

짧은 시간 동안 느낄 수 있는 향기다.

by 글적이다

나는 응급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이동했다.

친구들과 전역 기념으로 세부 여행을 가려고 계획도 했지만

하루아침 비행기 창문이 아니라 병원 창문을 바라보게 되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나는 수술을 안 한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아침에 회진을 오신 담당의에게 물어봤다. “제 소장에 구멍이 왜 생겼나요?"

“아마 크론병으로 의심이 됩니다. 정확한 건 조직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사실 난 크론병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생명시간에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라고 배웠다.

크론병은 희귀병으로 2,000명 중 한 명이 있는 정도이다.


음식은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통증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 대신 하얀 액체가 든 커다란 영양제 링거를 맞았다.

영양제 링거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맞다 보면 주사 부분이 부어올라 아팠다.

그래서 한 번씩 링거 위치를 바꿨다.

양쪽 팔, 손 번갈아가면서 링거를 맞다 보니 모든 곳이 부어있었다.


항생제는 하루에 두 번, 세 번 정도 맞았던 것 같다.

항생제를 맞으면 코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이 있다.

나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은근 중독성 있는 향이다.


입원을 하고 2~3주 시간이 흐르고 나름 괜찮아졌을까, 흰 죽을 도전 했다.

그날 밤에 배가 아파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에 간호사분들에게 진통제를 요청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내 상태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치료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결국 신촌의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입원 생활에 나도 지쳐서, 그냥 빨리 얼른 수술이라도 하고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 얼른 옮기자고 했다.


병원을 옮기는 날에 정말 오랜만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집 냄새는 뭉클함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집 풍경을 구경하며 푹신한 침대에 앉으니

"내가 이런 익숙함을 모르고 살았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그땐 몰랐지만, 때가 되면 알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샤워를 하고 새로운 병원으로 향했다.


신촌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게 될 담당 교수님이 크론병 관련해서 유명하신 분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안심되고 얼른 치료를 받고 싶었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마쳤다.

새로운 병원에 입원을 하고 다시 검사를 했다. 피검사와 CT, 엑스레이 등 첫날은 검사하느라 바빴다.


입원 수속을 밟고 첫날은 2인실에 입원했다. 링거는 맞기 싫었지만, 결국 맞았다.

다음날 결과를 본 뒤, 담당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달 정도 항생제 치료를 했는데, 영상 결과를 보면 나아진 부분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장의 염증부위들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는 게 좋을 듯싶어요.”


어떻게 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말 아픈 게 죽도록 싫지만, 나아지고 싶기에 난 체념하며,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했다.

그렇게 내 수술 날짜가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