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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신호를 무시하면 맞이하게 되는 순간

몸, 마음을 비추는 창

by 삶N

다시 펜을 들기로 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글을 쓰는 자리가 벌써 낯설지 않다. 숨을 바라보며 시작한 작은 기록이, 자연스레 다음 이야기를 불러냈다. 이번에는 숨과 늘 함께 있었지만, 정작 오랫동안 외면해 온 몸에 대해 쓰고 싶다.


숨과 몸을 따라가는 일은 오랫동안 내 삶 속에 있었다. 상담실에서는 내담자들의 표정과 몸짓을 살피며 마음의 언어에 귀 기울였고, 또 다른 자리에서는 호흡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도하며 긴장을 풀어내도록 도왔다. 서로 다른 길이라 여겼던 두 흐름은 결국 한 자리에 닿아, 내 삶을 이끄는 업이 되었다. 사람들의 몸을 살피고 마음을 읽는 일이, 자연스레 나의 길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내 몸은 오랫동안 외면한 채 살아왔다. 내담자에게는 귀 기울였고, 회원들에게는 세심히 반응했지만,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낯선 얼굴을 마주했다. 피곤에 지친 표정, 굳어버린 어깨, 흐트러진 자세. 나는 얼마나 오래 내 몸의 목소리를 무시해왔던가.


그 후로 알게 되었다. 몸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비추는 창이었다는 것을. 긴장할 때는 어깨가 저절로 올라가고, 두려울 때는 발끝이 굳어버린다. 기쁠 때는 얼굴빛이 환해지고, 슬플 때는 시선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타인의 몸짓에서 읽어내던 신호들이, 사실은 내 안에서도 늘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몸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발끝에 힘이 들어가는지, 어깨가 굳어 있는지, 숨이 가빠져 있는지를 살폈다. 단순한 관찰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몸의 신호를 존중하자, 마음도 따라 안정되는 경험이 찾아왔다.


몸은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였다. 몸을 돌보지 못한 시간만큼 마음도 무뎌져 있었지만, 다시 몸을 존중하자 마음도 서서히 살아났다.


어쩌면 몸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나를 대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오랫동안 내담자와 회원들의 몸과 마음에는 반응하면서도, 정작 내 몸의 언어는 외면해 왔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건네고 싶다.


삶은 숨으로 짜이고, 몸으로 기록된다. 숨이 무늬라면, 몸은 그 무늬를 드러내는 직물이다. 우리는 각자의 몸을 통해 저마다의 삶을 직조해 나간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시 몸을 바라본다. 그것은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무시했던 몸의 신호와 화해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숨을 고르듯 몸을 다독이며, 나는 이 기록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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