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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마음을 닮는다”

보이지 않는 리듬이 관계를 짓는다

by 삶N

그동안 상담실과 연구실에서 수많은 관계를 지켜보았다. 아이의 울음과 부모의 한숨 사이에는 언제나 설명하기 어려운 공기가 흐른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눈물을 흘렸고, 아이는 부모의 한마디에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볼수록 깨닫게 된다. 마음은 결국 마음을 닮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관계를 말로 쌓는다고 믿는다. 좋은 대화, 따뜻한 표현, 올바른 훈육이 관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계는 말보다 훨씬 더 미묘한 결로 이어진다. 그 결의 이름은 ‘정서의 리듬’이다. 부모의 숨결, 눈빛의 방향, 손끝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리듬이 아이의 마음에 스며든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늘 걱정이 많았다. “얘는 왜 이렇게 작은 일에도 불안해할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늘 빠르고, 어깨는 굳어 있었다. 아이의 불안은 어머니의 불안을 닮아 있었다. 그녀는 늘 아이를 먼저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그녀의 숨을 바라보았다. 불안은 언제나 몸의 리듬으로 드러난다. 긴장이 높을수록 숨은 짧아지고, 짧은 숨은 또 다른 긴장을 부른다.


나는 늘 말했다.

.

.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숨을 조금만 바꿔보세요.”


부모는 처음엔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며칠 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게 화가 날 때면 그냥 잠시 숨을 내쉬어요. 그 한숨 덕분에 아이를 다그치지 않게 됐어요.” 그 말속에는 조금의 놀라움과 단단한 확신이 섞여 있었다. 숨이 바뀌자, 아이의 표정도 달라졌다고 했다. 그 변화는 훈육의 결과가 아니라 관계의 리듬이 달라진 결과였다.


관계는 언어보다 먼저, 리듬으로 전해진다. 부모가 한숨을 내쉴 때 아이는 그 공기를 읽고, 부모가 미소를 지을 때 아이의 어깨는 따라 풀린다. 그 리듬은 따뜻할 수도, 차가울 수도 있다. 결국 관계의 온도는 감정의 리듬에서 비롯된다.


나는 종종 부모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의 마음을 바꾸려 하지 말고, 당신의 마음을 다독여 주세요.” 이 말은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부모로서 완벽해지려 애쓰던 사람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볼 때, 비로소 관계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자신을 향한 따뜻함이 아이에게 닿고, 그 온기가 관계의 공기를 바꾼다.


감정의 리듬은 전염된다. 부모가 평온할수록 아이는 안정된다. 부모가 자신을 신뢰할수록 아이는 세상을 신뢰한다. 관계의 본질은 이처럼 단순하고, 동시에 깊다.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숨을 먼저 배운다. 그들의 몸은 부모의 긴장을 기억하고, 마음은 부모의 속도를 닮는다. 그래서 부모의 숨이 고요해질 때, 아이의 마음은 피어난다.


나는 이제 관계를 ‘고치는 일’로 보지 않는다. 관계란 억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리듬을 조율하는 일이다. 서로의 호흡이 맞춰지는 그 짧은 순간, 마음은 자연히 연결된다. 말보다 먼저 닿는 그 온기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함께 자라난다.


마음은 마음을 닮는다.

그리고 그 닮음 속에서, 관계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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