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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공기처럼 전이된다 “

멈춤의 길 위에서의 회복

by 삶N

말은 오가지만, 진짜 이야기는 말 사이의 침묵 속에 머문다. 아이의 울음과 부모의 한숨 사이에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리듬이 흐른다. 어떤 날은 그 리듬이 지나치게 빠르고, 또 어떤 날은 멈춘 듯 고요하다.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한다. 마음은 결국 마음의 속도를 닮는다는 것. 그리고 그 속도를 바꾸는 가장 작은 단위는 언제나 ‘숨’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어머니의 말 속에는 아이를 향한 걱정과 자신을 향한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끊지 않고 그저 바라보았다. 그녀의 짧고 불규칙한 호흡, 굳은 손끝과 떨리는 시선. 불안은 언제나 몸의 속도에서 시작된다. 숨이 짧아질수록 마음은 세상의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고, 그 떨림은 곧 관계의 온도를 바꾼다.


그녀에게 새로운 기술을 알려준 적은 없다. 다만, 잠시 ‘공기를 바꾸는 법’을 함께 연습했다. 말이 아닌 숨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연습이었다. 깊고 따뜻한 호흡이 몸 안에 머무르자, 굳어 있던 어깨가 풀리고, 시선이 천천히 아이를 향해 닿았다. 그 시선에는 판단이 아닌 이해가, 통제가 아닌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시선이 말을 바꾸었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이전에는 다그침이었던 말이, 이제는 온도가 있는 언어가 되었다.


호흡이 변하면 시선이 달라지고, 시선이 달라지면 말의 결도 바뀐다. 그 셋이 맞물릴 때, 관계의 공기는 부드럽게 풀린다. 공감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숨과 눈빛과 말이 같은 리듬으로 흐를 때 피어나는 온기의 형태다.


며칠 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화를 낼 것 같던 순간, 이상하게 숨이 먼저 내려앉더라고요.” 그 말 안에는 작은 놀라움과 단단한 평화가 함께 있었다. 아이를 바꾼 것은 훈육이 아니라, 관계의 리듬이었다.


관계는 언어보다 먼저 리듬으로 전해진다. 부모가 한숨을 내쉴 때 아이는 그 공기를 읽는다. 부모가 미소를 지을 때 아이의 어깨는 따라 풀린다. 그 리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도를 가지고 있다. 따뜻하거나 차갑거나, 안정되거나 흔들리거나. 결국 관계의 질감은 감정의 리듬에서 비롯된다. 이렇기에 관계란 억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이다. 숨이 포개지는 그 짧은 순간, 마음은 말없이 닿는다. 그 닿음이 반복될수록 관계는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부모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당신의 숨을 살펴보라고. 그 순간, 이미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부모가 스스로의 호흡을 인식하는 순간, 관계의 공기는 부드러워진다. 숨은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사랑이 머무는 공간이다.


멈춤은 정지가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 그 짧은 고요 속에서 우리는 다시 느리게, 다시 따뜻하게, 다시 연결된다. 말보다 먼저 닿는 온기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자라난다.


마음은 마음을 닮고, 그 닮음 속에서 관계는 비로소 살아난다. 평온함도 전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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