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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해주는 것들

몸이 들려주는 가장 정직한 대답

by 삶N

퇴근길에 문득, 몸이 납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루를 버텼다는 안도감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나는 오늘 얼마나 긴장한 채로 있었을까’ 하는 자문이다. 어깨는 귀에 닿을 만큼 올라가 있고, 손끝은 작은 일에도 힘을 놓지 못하고 있다. 몸은 늘 마음보다 정직하다. 말로 감춘 피로와 걱정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단단히 세우는 법만 배워왔다. 하지만 몸은 언제나 그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괜찮은 척’을 할 때마다 숨은 조금씩 짧아졌고, 작은 일에도 근육이 긴장했다. 그건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였다. “지금, 나를 좀 들어줘.” 그 목소리를 외면한 채 오래 살아왔다. 견디는 법은 익숙했지만, 쉬는 법은 낯설었다.


요가를 가르칠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몸을 본다. 숨을 참고 버티는 어깨,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비치는 시선, 균형을 잡지 못하는 발끝. 몸은 늘 마음의 언어를 먼저 말한다. 그래서 나는 수업 중에 종종 묻는다. “지금, 어디에서 숨 쉬고 있나요?”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어깨가 내려가고, 턱이 풀리고, 얼굴의 긴장이 조금씩 사라진다. 그 순간 나는 안다. 그들의 몸이 이미 회복을 시작했다는 것을.


필라테스를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흔히 코어를 단련하는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중심은 복부의 근육이 아니라 호흡의 리듬에 있다. 몸이 흔들릴 때는 마음이 흔들릴 때이고, 마음이 막힐 때는 숨이 막힐 때이다. 움직임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의 거울이다. 우리는 움직이며 생각을 비우고, 숨을 고르며 자신을 되찾는다. 완벽한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몸을 세우는 일은 결국 마음을 세우는 일과 같다.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빈 스튜디오에 남을 때면, 늘 고요한 여운이 남는다. 땀이 마르고, 호흡이 차분히 가라앉을 때쯤 문득 깨닫는다. ‘아, 오늘의 나도 이렇게 버텨왔구나’ 생각하며 조용히 호흡한다. 긴 하루의 무게가 숨결을 따라 천천히 흩어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세한 온기가 피어오른다. 그제야 알 수 있다. 몸이란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라 하루의 감정이 가장 먼저 머무는 자리라는 것을.


요가에서 말하는 아사나(Asana)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대화하는 언어이다. 필라테스의 정렬 또한 단순한 자세 교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내면의 균형이다.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만난다.


몸을 돌보는 일은 피로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불러오는 의식이다. 움직임이 고요해질 때 마음이 따라 고요해지고, 숨이 길어질 때 생각이 따라 느려진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회복한다. 오늘도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움직이세요.” 그건 역설처럼 들리지만, 진실이다. 움직임은 쉼으로 가는 다리이고, 몸의 회복은 마음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몸이 알고 있던 것을 이제야 마음이 이해한다. 몸은 늘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쉬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쉼이야말로 살아 있는 모든 움직임의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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