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몰아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고통을 막는 방법은 약간의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 외에 딱히 없다. 그러나 진통제도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결국 가까운 관계가 사라진 그 빈자리를 받아들여야만, 내 의식과 신체가 모두 받아들여야만 아픔은 끝이 난다. 그러니 이별의 고통을 멈추는 방법은 없다.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별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을 깊게 느낄수록 이별 후 상대방의 빈자리가 빨리 커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통을 제대로 느낀다는 것이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부정적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감정에 저항하거나 감정을 인위적으로 연장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명상의 배움이 활용될 수 있다. 명상을 할 때 우리는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의식에 떠오르는 다양한 감정들을 관찰할 수도 있다. 충분히 알아차린다면, 감정과 생각이 어떻게 번갈아가며 나타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의식에서 단지 떠오른다.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자주 일으킨다. 생각이 감정을 타고 꼬리를 무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렇게 알아차리지 못한 생각은 곧 우리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언어적인 생각의 예를 들자면,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지?", "미친놈" 과 같은 말들이 그냥 떠오르고, 이것이 단지 생각에 불과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떠오르면 마치 우리가 저 생각의 주체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즉, 내가 저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것처럼 계속해서 느껴지게 된다. 이것이 자아의식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느낀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을 생각으로써 알아차리고, 그래서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감정을 감정으로써 느끼는 것을 말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감정을 감정으로써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렇게 부정적 감정을 알아차리면, 우리가 자주 감정에 저항하려고 한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된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이 많이 발생한다. 부정적 감정이 나타나도록 그냥 두라. 그냥 두고 그 감정의 패턴을 세세히 느껴보라.
감정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휩쓸리면, 끊임없는 부정적인 생각의 연쇄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감정과 생각의 폭포(cascade)를 겪게 되면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명상을 시도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별한 상태에서 명상을 처음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평소에 명상을 수련하고 있었다면 이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당장 명상 기법이 필요하다면, 호흡을 가다듬는데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들숨을 최대한 깊게 마시고, 몸을 이완하면서 날숨을 들숨의 2배 이상이 되도록 천천히 내쉰다. 이를 10번 정도 반복하면 부정적 생각의 연쇄를 끊을 수 있고 상당히 이완된 상태가 된다. 그러고 나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감정을 감정으로써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본다.
알아차림이 잘되지 않아도 쉽게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따듯한 마음(loving-kindness)을 내는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가 상처받았을 때 그 친구를 위로해 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가 아니라 가족을 위로해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이 아니더라도, 길에 가다가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 그 아이에게 마음을 어떻게 쓸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상처에 대해서도 그런 따듯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엄청난 치유의 효과가 있다. 나 자신에게 속으로 위안을 건네는 것이다. 괜찮을 것이라고, 이 모든 일들은 극복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위로하는 목소리인 나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아마 며칠간 아플 것이다. 심하면 한 달이 넘도록 아플지도 모른다. 아플 때마다 자신에게 따듯한 마음을 내서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이별을 극복하는데 상상할 수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별 후에는 자신에게 따듯한 마음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언제나 타인에 대해서도 따듯한 마음을 낼 수 있는 인간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별에 대한, 우리가 겪을 고통에 대한 짧은 성찰로 글을 마친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삶에는 역경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훨씬 많은 수의 실패를 겪어야만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몇 번의 이별이, 이번의 이별보다 더 지독한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정을 쌓기 위해 타인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살면서 지독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타인과 경쟁에 나서야 하고, 몇 번은 패배하고, 승리하더라도 타인의 고통을 목격해야만 할지 모른다.
이 모든 위험을 피해 승승장구하더라도, 가까운 누군가 어떤 죽을 병에 걸릴 것은 우리 삶에서 분명히 예정되어 있는 일이다. 나의 부모님이, 나의 자식이,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음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들보다 먼저 죽을 병에 걸리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고난은 말 그대로 우리 삶에 예정되어 있다. 피할 방법이 없다. 전혀 없다.
이 고난 속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성숙해야 한다. 고난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느끼는 아픔을 온전히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이 고난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을 감싸 안을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