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휩쓸린 삶에서 깨어나라는 알람이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감정으로써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화가 나면 몇 초만 참아보라는 잘 알려진 지혜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그 감정을 유지하지 않는 이상 아주 빠르게 흩어져 버린다. 오히려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계속해서 불만스러운 생각을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생각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자연스레 이어진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다. 고통을 유지하기 위해,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우리 정신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감정과 생각에 휩쓸렸다는 신호다.
샘 해리스는 그의 명상 커뮤니티 어플리케이션 <Waking Up>에서 엄청난 통찰을 아주 명료한 말로 보여준다. 영어 듣기가 가능한 사람은 그의 Introductory Course를 꼭 들어보기를 바란다. 그는 명상에 종교가 개입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종교 없는 명상의 길을 보여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샘의 이런 성취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간 삶의 본질에 해당하는 실천을 찾아헤매고 있었다. 종교에서 그 희망을 찾기도 하였지만, 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만약 명상이 진짜 인간 삶에서 핵심적인 현상이라면, 종교적인 논의 없이도 명상에 이르는 길이 있어야 자연스럽다. 종교적인 현상의 기저에 명상이라는(알아차림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실천이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면, 명상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것이다.
샘 해리스가 강조하는 단어 중 하나는 Mindfulness Alarm이다. 강력한 개념인데, 내가 앞서 설명한 "감정이나 생각에 휩쓸렸다는 신호"가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고통의 역할은 우리를 계속해서 고통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은 우리가 무언가 해소해야 한다는 신호다. 고통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의 애쓰는 마음을 알아차리라는 신호다. 그렇게 할 때 고통은 씻겨 내려간다. 이것이 부처가 인간 삶에 대해 제기한 문제이자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삶에는 고통이 있지만, 고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결국 평온함만이 가득하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보아야 할 뿐이다.
이런 프레임에서 고통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재해석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알아차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의 이런저런 장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는 그 장점을 취하기 위해서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스포츠나 운동이 아니다. 명상의 핵심인 알아차림은 의식에서 근본적인 체험이다. 그리고 이 체험을 너무 자주 방해받는다. 샘 해리스는 알아차림이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이 경험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불같이 화를 내다가, 과도하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멋쩍어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다가, 알아차린다. 무엇을 알아차리는가? 우리의 신체 감각, 감정, 생각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꿈에서 깨어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삶은 비로소 충만해진다.
고통은 꿈을 깨는 알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