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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글마음 Aug 09. 2021

이상한 나라의 소통법

최근 '문해력'을 높여야 한다는 뉴스를 교육업계에서 많이 듣곤 한다. 문해력은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요즘 유튜브 같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생겨난 의사소통의 문제를 문해력을 빌어 문제의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피상적이고 단순하게 자신의 생각으로 해석해버린다는데 있다. 즉,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이 이해하기 쉬운대로, 이해하고 싶은 대로, 빨리 생각하고 유추하여 판단해버리는 습관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우려한 대로 학자들의 문제적 지적은 현실에서 쉽게 드러난다.


하루는 식당에 들어서는데 식권을 내는 곳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다가 바구니를 가리키면서 "여기다 내면 되나요?"라고 묻자 상대방은 "저쪽에서부터 수저와 젓가락, 식판 들고 하나씩 들고 가시면 됩니다"라고 답한다. 나는 순간 '잉?! 뭐지???' 하면서 그 사람을 한번 쳐다보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바구니에 식권을 넣고 나왔다.

 또 하루는 한 건물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들렀는데, 1층 로비에서 QR코드를 찍고 들어가 신청 접수한 후에 30분 정도 걸린다는 말에 옆 건물 커피숍에서 기다리기 위해 이동하는데 또 QR코드를 찍거나 접수증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저 옆에서 접수하고 30분 있다가 오라고 했어요"라고 했는데, 안내요원은 "방문자는 QR을 찍으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접수증을 보여주면서 "여기 있어요"라고 했더니, 안내원은 QR코드 찍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잉??? 나 외국어 한 거니?'


두 가지 에피소드뿐 아니라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러한 동문서답을 하는 상대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왜 그럴까?

하나는 마스크를 써서 말이 잘 안 들려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잘 안 들린다고 다시 묻지 않고 다른 답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이해해야 할까?

다른 하나는 학자들의 지적처럼,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이 많아졌고 사람들은 좀처럼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것도 아닌데, 소통하기가 어려워진 것은 내 기분 탓일까? 제 아무리 소통의 중요성을 교육시키고 강조해도 미디어의 영향력을 넘어서기 어려운 것일까? 점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종이책을 들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워지고 하루에도 여러 번 소통하기 어려운 한국인이지만 외국인 같은 동료, 후배, 이웃들을 마주하긴 쉬워졌다.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자각할 때쯤이면, 이미 그들은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힌 채  사람들과 단절된 사회를 겪고 있을 것이다. 마음이 공허할수록 미디어보다 책이나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단 5분만이라도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여유를 가져봤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몸과 마음을 모두 단절시키진 않길 바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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