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단 한 사람이, 오래된 열 명보다 더 깊었다.
예전엔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에 나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영원한 내 편일거라 믿었다.
하지만 마흔을 넘고 나니, 오래된 관계가 늘 의미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이 쌓인 만큼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가끔은, 오랜 시간 속에 고정된 이미지와 관성만 남는 관계가 있었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너는 예전부터 늘 그랬지.”
과거의 나로만 기억되는 자리에서
지금의 나는 자주 작아졌다.
그럴 땐 문득, "우리 친했던게 맞아? 같은 결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다른 방향을 보고 가는 걸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마흔 이후의 인간관계에서 나에게 제일 중요한 건 ‘가치관’이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 말의 온도, 시간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런 것들이 비슷한 사람과의 대화는 자주 마음에 따뜻한 물결을 일으켰다.
예전엔 말이 많고, 자주 만나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용히 옆에 있어도 부담 없이 마음 나눌 수 있는 사람, 삶의 방향이 비슷한 사람이 진짜 친구가 되었다.
한번은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오래된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직장 상사가 자기가 정신 없어서 일을 못해놓고 나한테 뒤집어 씌우고 전화해서 욕을 하면서 따지는거 있지. 그래서 계속 감정적으로 욕하시면 전화끊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계속 스토커처럼 전화를 하는거야. 전화끊어버린걸로 단톡방 사람들한테 내 욕을 엄청 했다더라고"
“니가 잘못했네 .”
돌아온 대답은, 공감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우리의 방향은 더 이상 같지 않다는 걸.
그 후, 우연히 알게 된 모임에서
비슷한 고민을 해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해결책을 주는 대신 같은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나의 말에 공감하고, 같이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에 대해 서로 박수를 쳐주었다.
그 때 깨달았다. 삶에 대한 대처방식도 방향성이라는 증거였음을.
사람을 정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일수록 정을 떼기도 공유했던 기억의 시간을 지우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듯 모든 인간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삶의 방향이 바뀌고 나서야 알게 됐다.
예전에는 밤새 수다 떨며 웃었던 친구와 이제는 단 몇 분 대화조차 불편해진다.
서로의 말에 힘이 빠지고, 마음은 점점 조용히 뒤로 물러나게 된다.
그럴 때가 바로, 관계를 정리할 때임을 알려주는 시그널이라고 본다.
가치관이 맞지 않는 관계를 붙잡고 있으면 자신까지 어긋난 방향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건 애정이 아니라 집착이었고, 관계가 아니라 소진이었다.
관계를 정리한 후, 뜻밖의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공통된 경험도 없고, 배경도 전혀 달랐지만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내 마음에 불을 켜주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힘이 나요.”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요.”
서로를 자극하지 않고, 영감을 나누는 관계가 생겼다.
그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고, 새로운 도전을 자극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어울리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선물했고, ‘나도 나다울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것이 마흔이 넘고 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순리인 것 같다.
친구의 배신감은 예상보다 깊었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 대인관계 기피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신뢰하고 돕기를 좋아하던 내가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는 걸.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진짜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더 분명한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많지 않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사람들이었다.
마흔 이후의 우정은 ‘누구랑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를 묻게 된다. 지금의 나는 친구를 새로 배우고 있다. 어쩌면 이제야 진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인생의 여정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삶의 고민, 지금 내 감정의 흐름을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 이들이 진짜 친구다.
오래된 인연도 좋지만,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해졌다. 나이 들어 친구를 사귀는 건 쉽지 않지만,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관계는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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