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버스터미널이 있는 시내를 향하기 위해 공항 트레인을 탔다.
하지만 노래를 듣고 있던 탓에, 내려야 할 장소에서 내리지 못하고 트레인은 다시 종점을 돌아, 공항으로 향했다.
당황한 나는 허겁지겁 내려 반대편의 시내행 트레인으로 갈아탔고,
우여곡절 끝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말라카에 가는 버스를 탑승했다.
국경을 넘을 때는 모든 사람이 버스에서 내려 짐을 들고 이동해야 했는데,
옆에 있던 남성분이 짐을 드는 걸 도와주신다며 말레이시아 여행은 처음이냐고 말을 거는데,
혹시 도와주시고 추후에 돈 달라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과 의심부터 들어 제대로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런 의심 없이 고마워하며 그와 친구가 되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달라졌다.
그는 내가 줄을 잘 선 걸보고 이제 자기가 가도 괜찮냐고 물은 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떠났다.
싱가포르 출국 수속을 마치고, 말레이시아 입국 수속을 한 뒤 말라카 행 버스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처음에는 모르고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내 캐리어에서 잠금 벨트가 떨어져 그것을 챙겨 주려고 소리친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캐리어 벨트를 주며 "여유를 가져"라고 말을 해 준 뒤 떠났다.
"여유를 가져"라는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말라카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숙소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그곳은 너무 멀다고 30링깃을 부른다.
긴 이동과 더위에 지쳐 흥정할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출발했는데 알고 보니 15링깃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힘들게 도착한 숙소에는 직원은 없고, 굳게 닫힌 문과 도착하면 연락 주세요.라는 메모만 있다.
유심도 없고, 로밍도 하지 않아 무작정 입구에서 기다리다, 다른 손님의 도움으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흠뻑 흘린 땀을 식히기 위해 차가운 물로 샤워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중심가로 향했다.
말라카는 작은 도시지만 강이 있고, 다양한 색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예쁜 도시였다.
도시의 전경이 보이는 세인트 폴 언덕도 올라가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감상하며
말라카는 야경이 예쁘다고 들어 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밤은 안오고 비가 쏟아지는 게 아닌가...
급하게 우산을 사고 식당 안에서 사태와 맥주를 시켜 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지만,
비는 점점 더 강하게 오고 더 있다가는 집에 제대로 돌아가기도 힘들 것 같아 야경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말라카에서는 1박만 예정되어 있어 아쉽지만, 다음날 목적지인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탔는데 요금이 단 돈, 1링깃이다.
저렴해도 너무 저렴한데 에어컨도 잘되어있고 심지어 시설도 깨끗하다.
갑자기 어제의 택시요금이 생각나 갑자기 가슴이 아파진다.
버스터미널은 생각보다도 더 가까웠고 미리 예약한 쿠알라룸푸르행 버스에서는
장영희 작가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라는 책을 읽었다.
"몇 년 전 여름에 LA의 언니네 집에 들렀을 떄 우찬이와 함께 어떤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도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그중에 한마디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살림도 어려운 미혼모 조디 포스터가 일곱 살 난 천재 아들의 장래를 위해
양육권을 포기하고 아이를 먼 곳에 있는 영재 학교로 보내게 됩니다.
어쩌면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아들을 보내며
그녀는 평상시에 하룻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아들에게 하듯
"그래, 내일 보자(See you tomorrow)"라고 말합니다.
아들과 헤어지는 아픔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였겠지요.
그 후 LA에 들렀다 한국에 돌아갈 때마다 우찬이는 내년에 보자는 말 대신에 "이모, 내일 봐"라고 말하곤 합니다.
'내일'과 같이 짧은 시간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면 헤어지는 마음이 덜 아쉽겠지요."
라는 구절을 읽는데 조디 포스터의 마음이 우리 엄마의 같아서,
그들의 이별이 꼭 우리 가족의 이별 같아서,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한참이나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책에 몰입되어, 읽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였고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알로 스트리트에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4일을 보냈는데,
마지막 날에는 반딧불이 투어를 신청했다.
왕궁과 바투 동굴 그리고 원숭이들이 모여있는 몽키 힐을 둘러본 뒤
반딧불이를 보러 이동을 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까?라고 이동하는 내내 걱정을 했는데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작은 배에 타길 기다리는 순간 비가 그쳤다.
태어나서 처음 본 반딧불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잡으면 날아갈 것만 같아, 손을 가까이 할 수도 없을정도로 소중했다.
반딧불이를 보던 그 시간, 풍경, 바람, 냄새 모든 게 좋았다.
반딧불이를 보고 돌아가는 차를 타자마자 언제멈췄냐는 듯이 비가 다시 쏟아졌고,
그날 밤 내내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날 밤에는 함께 반딧불이 투어를 한 언니와 언니의 호텔에서 함께 잤는데,
언니는 원래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계획했는데
여행 직 전에 남자친구와 다투어 결국 혼자 왔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행은 참 신비롭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게 하기 힘든 속 깊은 이야기들을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아마도 이 사람과는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언니와 처음 만난 날이지만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니가 남자친구 모두의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길, 언니와 남자친구를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언니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남자친구와는 과연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언니의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