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럽던 편지 때문이었을까, 이전에 만나본 적도 없고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은 게 전부인 통진을 만나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통진은 프랑스 중국인 유학생으로, 4명과 함께 집을 쉐어 하고 있었고,
따로 여분의 방이 없는 나는 통진의 방에 함께 머물면서 그는 침대에, 나는 그의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지냈다.
그는 함께 니스를 안내해 주었고, 저녁을 만들어주었으며
그의 쉐어메이트들도 잘 대해줘서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다.
그렇게 통진의 집에서 머물며, 모나코와 칸느를 여행하고 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했다.
베네치아는 때 마침 가면 축제기간이었는데,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오지 않아 예산에 맞는 숙소를 구하는게 힘들었다.
처음에는 별 2-3개의 호텔을 갔는데, 적어도 1박에는 50유로 이상이었다.
남은 예산으로는 도저히 머물 수 없었다.
그러다 별 1개짜리의 marte라는 호텔을 발견했는데, 사정을 말하며 저렴한 방을 찾는다고 말하니
1박에 20유로에 해준다고 하셨다.
20유로도 부담이 되어 혹시 호텔 로비에 앉아서 자는 건 얼마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내가 가여웠는지, 그냥 앉아서 자라고 손 짓 하였다.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와 피곤한 상태에서, 배낭을 메고 예산에 맞는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는 여정이 너무 힘들어서 였는지, 너무도 간절하게 눕고 싶었고 할머니에게
2박에 26유로는 어떠냐고 여쭤보니
그렇게 감사하게 그렇게 머물게 해줬다.
고마운 할머니 덕분에 베네치아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다.
그렇게 무라노, 부라노 섬을 구경하며 가면 축제를 구경하며, 베네치아를 여행했다.
추후 로마로 갈까, 니스에 큰 카니발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어 니스로 돌아갈까 고민을 하다,
이탈리아는 니스보다 날씨도 춥고, 물가도 비싸다고 느껴 다시 통진의 집이 있는 니스로 돌아갔다.
기차역에서 유레일패스를 보여주며 가장 빠른 니스행 티켓을 사는데,
직원이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돼서 yes라고 답하니,
28유로를 달라는 게 아닌가, 올 때는 13유로에 티켓을 구매했는데 왜 비싸냐고 물으니,
이럴 시간이 없다고 기차 출발 시간이 5분도 안 남아서 기차를 놓칠 수 있으니 빨리 타야 한다고 했다.
급한 대로 28유로에 티켓을 사고 기차에 타서 보니 2명분의 티켓이었다.
시작이 안 좋다.
기차는 곧 출발했고,
유레일패스에 사용 날짜를 미리 적지 못해 직원 앞에서 17일 날짜를 적는데, 7의 표기법 때문에 검표원과 실랑이가 생겼다.
내가 쓰는 7의 표기법이랑, 그가 쓰는 표기법이 달라 그는 내가 쓴 17에 자기가 쓰는 표기법 처럼 짝대기를 하나 그엇고, 나중엔 이걸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환승 후, 3번째 기차에서 검표원이 내 유레일패스를 보더니 너 14일을 17일로 네가 고쳐 쓴 게 아니냐며,
날 의심했다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하고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곧 100유로의 벌금이 적힌 종이를 가져간 채, 내 유레일을 돌려 주지 않았고
대사관에 연락해달라는 내 요청에도 안된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너무 억울해 스케치북에 상황을 적어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직원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하니,
역무원은 벌금을 50유로로 깎아준다고 했다.
그것도 억울해서 못 낸다고 하니, 그럼 같이 경찰한테 가자고, 그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기차에 내려 경찰한테까지 갔는데, 경찰은 벌금을 주고 유레일패스를 받고 끝내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 간 니스에서 통진과 그의 친구들은 나를 반겨주었으며,
그날은 니스에서 큰 축제인 니스 카니발의 개막식이 있어 우린 함께 개막식을 보러 갔다.
돌아온 나는 통진의 집에서 꽤 오랜 기간 머물며,
이전에 가지 못한 다양한 도시들을 방문하며,
코트다쥐르라는 프랑스 남부의 해안지역을 여행했다.
그 기간은 때 마침 축제 기간과 겹쳐, 니스 카니발과 망통 레몬축제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하루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인 스페인 너는 자유다의 작가인 손미나 님이 니스에 온다는 트윗을 보고
"지나가다라도 그녀를 마주쳤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감사하게 그녀는 오늘 니스에 온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만날 거라는 기대 없이 그녀에게 문자를 하고 통진과 그의 쉐어메이트인 마크가 함께 장을 보고 오자고 해서 다녀와서 다시 확인하니, 언니가 계신 식당의 주소를 적어주셨었다.
통진에게, 장소를 물어 빨리 트램을 타고 가 미나 언니를 만났다.
이 여행을 떠나게 동기를 부여해주 신 분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참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언니에게 이 여행이 시작하게 된 이유와 여행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언니는 내게 밥을 못 사줘서 미안하다고, 일행분들과 돈을 모아 40유로를 내 손에 지어주며 식사라도 맛있게 하라고 하셨다.
니스에서 하루는, 동네 철물점을 구경하다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아주머니 클라라가
아시아의 문화를 좋아한다고,
자신의 집에 가서 차를 한잔하자 했고 순순히 클라라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작년에 방콕을 갔을 때 대한항공을 이용하며, 5시간 동안 인천을 경유했는데 얼마나 친절했었는지를 내게 칭찬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클라라는 젊었을 때 배우였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였다고 했다.
그러다 군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아들을 출산하고 그다음에 아들과 딸 쌍둥이를 출산했다
클라라의 남편은 클라라 딸 베티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고,
클라라의 딸 베티는 결혼할 때 기사가 날 정도로 나름 프랑스에서 유명한 배우였다고 한다.
베티는 배우였는데, 미국인 변호사 남편을 만났다
그 미국인 남편은 매우 부자였으나, 이미 다 큰 2딸이 있는 재혼이었다고 한다.
베티와 남편은 매일매일 파티를 즐기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돈을 쓰며 유흥과 쾌락으로 즐거운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인생은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베티가 임신을 해 곧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두 손 두 발이 완전하지 않아 서있을 수도 없었고 매일 앉아서 생활해야만 했다.
베티는 파티보다는 자신의 아이를 돌보기를 원했고.
남편은, 곧 밖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편의 2딸은 베티를 더더욱 힘들게 했고. 남편마저 베티를 보지 않고, 쾌락의 삶을 즐기고.
그렇게 베티는 힘들어했다.
그러다 그 아이가 15살이 됐을때 결국 그 아이는 천국으로 갔고
지금 베티는 미국에서 산다고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함께 울고 웃었다.
클라라와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 교감했다.
클라라는 만약 내가 호텔에서 지내면, 방에서 나와 자신의 집에서 지내기를 권유했고..
오늘이던, 내일이던 언제든 와서 지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 주소, 이메일 주소, 연락처 등을 다 적어,
올해던 내년이던, 클라라가 4~6월 그때 미국에 가는데, 그때 빼고 내가 니스에 올 때면
언제든지 자신의 집에서 생활해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와 클라라와 특별한 만남을 통진에게 이야기하며 잠들었다.
니스에서 며칠을 평범하게 더 머물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중국인 민박집에서 머물며 시내를 다시 둘러보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가진 게 없이 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여행
여행은, 어떤 장소를 가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혼자여도 결국 사람들로 채워지는 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