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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202308

by 모래알

“우리가 자신의 전부를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읽고 있는 <인생의 역사>에 인용된 히라노 게이치로의 글이다. (나란 무엇인가) 정말 공감 가는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서 나의 모든 모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떤 모습의 나를 좋아하는가 한번 떠올려보게 되었다. 여러 역할의 모습이 있다. 두 아들의 엄마, 한 남자의 부인, 가정을 이끌어가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안주인, 반려인, 개발자라는 프리랜서, 시를 배우고 있는 사람 등등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봤다. 현재의 여러 가지 역할들이 모두 맘에 든다. 그럼 반대로 싫어하는 내 모습은 뭘까?


무기력한 모습이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이다. 매사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편이었다. 몇 년 전 그런 의욕이 사라져 버린 시기가 있었다. 모든 외적인 조건들은 더 좋아진 환경이었는데 정신적으로 의욕이 사라진 나를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매일 공원을 2~3시간 걷거나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평화로운 시간이지만 속은 매일매일 전쟁 같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어디가 잘못된 걸까? 끊임없이 곱씹는 시간들이었다. 하고 싶은 의욕이 없는 것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걸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기에 나를 위로해 줬던 것 중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란 영화가 있다. 다도와 인생에 관한 소소하고 잔잔한 영화다. 다도선생님 집에 걸린 족자에 있는 일일시호일 글귀 뜻을 물어보는 여주인공에게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듣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라고 선생님이 말해준다. 일일시호일은 매일매일 좋다란 뜻도 있지만 매일매일 다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매일 달라서 좋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매 순간의 삶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지내온 시간들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니 부정적으로 느껴졌던 것조차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날은 한 번도 없다.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다 해도 시간의 흐름이 적용되는 순간 동일한 공간이 아닌 거다. 매일매일 걷는 산책길도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바람이 다르고 하늘이 다르고 풀과 나무들도 매번 달라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르다. 세상은 항상 머물러있지 않고 변화하고 있다. 그걸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 싫고, 나 또한 같이 변화하면서 다르게 살고 싶다. 어제가 오늘 같다는 건 알고 보면 참 무서운 말이다. 항상 똑같은 생각, 똑같은 일만 하는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피해서 어제의 나에서 오늘의 나로 조금씩 달라지고 싶다. 눈에 띄게 커다란 변화가 아니어도 좋고,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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