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호기롭게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어느새 일 년 하고도 반년이 훌쩍 지났다. 책 한 권 만들기를 목표로 시작했던 글쓰기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란 걸 깨달았지만 분명 너무나 어려운 길임에도 창작의 즐거움과 성취감에 현혹되어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속담처럼 글쓰기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묘한 매력에 빠져 도망가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켜켜이 쌓여가는 소박한 작품들은 내 시간에 대한 증거물이자 결과물이며 마음을 위로해 주는 존재들이다. 온전히 몰입하고 고민해서 나온 자신의 창작물이 주는 만족은 다른 즐거움에 비교할 수가 없다.
살면서 배워온 여러 가지 공부들은 열심히 투자한 시간대비 대체적으로 정비례로 상승하는데 비해 글쓰기는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 비율이 현저히 낮은 작업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도 그다지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시를 많이 쓴다고 해서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시는 완성된 순간 새장 속을 빠져나와 하늘로 훌쩍 날아가버리는 새와 같다. 첫 번째 시를 보내고 두 번째 시를 완성해도 더 괜찮은 작품이 나온다는 법칙도 없다. 상승의 모양이 지리멸렬하게 수평으로 움직이다가 한순간 훌쩍 점프하는 계단의 느낌이라면 하락의 모양은 단순한 수직낙하의 일직선이다. 핑계 아닌 핑계로 펜을 놓기 시작하는 순간 기껏 몇 계단이라도 올라갔던 높이는 단숨에 수직하강 후 맨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다시 또 “0”에서 시작해야 하는 거다. 글쓰기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포기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 쌓아놓은 모든 계단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느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가장 사치스러운 행위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하루 24시간을 소비하는 행위. 그게 바로 글쓰기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깨어있는 내내, 혹은 꿈속에서조차도 글을 생각하고 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다. 글을 쓰기 위해 꼭 필요한 3가지 -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기 – 는 그 속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백수 혹은 한량의 모습일 뿐인 것이다. 글 몇 줄 글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것처럼 낭비스러운 일이 없다. 아마도 그들은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풍요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글쓰기는 사치품이면서 동시에 필수품이기도 하다. 사람은 의식주 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존재이다.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글을 쓰는 것은 지금처럼 복잡한 물질문명의 시대에 더욱 필수불가결한 행위가 아닐까.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사회 속에서 견뎌야 하는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점점 더 사색이나 고독한 시간을 가지기가 힘든 세상이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스트레스만 가득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쓰기만큼 좋은 치료제가 없지 싶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여줄 글, 자신을 위로해 줄 글을 쓰면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글로벌한 인터넷, SNS 세상에서도 글을 쓰고 읽는 것을 보면 분명 글쓰기가 필수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햇살 좋은 마당에 엎드려 낮잠을 자는 사냥개와 같다. 일상을 보내는 틈틈이 어디선가 사냥감의 냄새가 나는 순간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순간 떠오른 한줄기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피곤하리만치 집착해야 하고, 무엇을 하고 있든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한다. 항상 쉬지 않고 글을 써야 한다. 슬럼프도 자주 찾아오고, 이걸 해서 무엇하나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요즘 자주 읊조리는 구절이 있다. “그저 매일 쓰고, 있는 힘껏 읽어라.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 (레이 브래드버리) 그래,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 결과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과정만 생각하고 하나하나 글을 쌓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