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3
주말에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알던 동네엄마모임을 가졌다. 큰아들이 4살쯤 알게 된 사람들이니 햇수로만 20년은 훌쩍 넘었다. 그때는 다들 같은 아파트 주민이어서 매일 만나 아이들도 같이 놀고 했던 멤버들이다. 이제는 다들 서울, 용인, 수원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자주 보지는 못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서 안부를 묻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사를 가고 아이들도 크면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최근에 정기적으로 모이게 되었고 만나면 다들 반갑다. 참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다. 서로 처음 알게 된 30대 시절만 해도 이렇게 오래 관계가 지속될 거란 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모임은 자주 만나지 않고 소원해져서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얘기할 때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하고만 만나고 싶다는 생각, 진정한 친구와의 만남만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간혹 거절을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나가는 경우에는 그게 참 불편하고 시간낭비 같다고 여겼다. 동창회 같은 경우는 더더군다나 피하게 된다. 졸업하고 몇십 년간 연락 한 번 하지 않던 관계였는데 갑자기 만나서 술 마시고 떠들어대는 그런 가벼운 만남이 계속 유지되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애매한 사람들과의 약속은 최대한 피하고 편안한 소수의 친구들만 만나곤 했다.
친한 벗은 서로 쌓아놓은 추억들이 많고 가끔 한두 마디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잘 통하고 서로의 기호도 잘 알는 편한 사이여서 같이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고민이 생겼을 때도 얘기를 들어주며 위로해 주고 좋은 일이 생기면 시샘하지 않고 같이 기뻐해주는 소중한 존재. 타인과 계속 좋은 인연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정은 숲길과 같아서 자주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져 점점 멀어지고 잊어버리게 된다.’는 말처럼 서로 꾸준한 연락을 하고 가끔씩 서로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어도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한다. 누구나 다 각자의 세계가 있어서 중요한 것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한다.
지금 친한 친구들과의 첫 만남은 다 제각각이다. 남편친구의 와이프로 소개받았던 언니, 프로그래밍수업에서 만난 동생, 10여 년간 같이 일했던 직장동료 모두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몇 달 혹은 몇 년간은 불편해하거나 어색한 관계가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서로 마음을 열게 되면서 친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얕은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누군가와 만나자마자 바로 친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시기까지는 만남을 진행해 가야 서로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건데. 이미 진정한 친구가 한두 명 있다고 해서 더 이상 친구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차단하는 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었다. 마음을 바꿔먹으니 만나기 불편했던 동네모임도 편하고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진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속 깊은 말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의 간격도 유동적이어서 항상 같을 수가 없는 거 같다. 한때의 죽마고우가 평생 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지금 적당한 거리의 사람이 나중에 절친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나와 상대방 모두 계속 변화하는 존재니까 우리들의 감정도 항상 같을 수는 없는 게 당연한 이치인 거다. 진짜 나를 잘 알아주는 오래된 친구도 좋고, 지금 새로 시작한 만남이 또 10년, 20년 지속될 사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좋다. 굳이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애매한 관계를 모두 끊을 필요는 없는 거다. 작은 인연조차 소중하게 생각하며 몇십 년 뒤에는 또 어떤 오래된 친구들이 내 주변에 있을까 살짝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