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려와 소심 그 사이

20240123

by 모래알

살면서 항상 주변사람에 대한 배려를 할 일이 많다. 자칭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미리 넘겨짚고 배려 아닌 배려를 하는 때가 제법 있다. 때로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용히 따르는 것이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서 소심하게 대세를 따를 때도 많다. 남들과 다른 의견을 소리 내어 말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든 건지 모르겠다. 특히 그 의견이 모두의 뜻과 반대되는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배려와 소심의 차이는 무얼까? 소심하게 의견을 내지 못한 경우에는 꼭 나중에 그때 말했어야 했다고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배려는 그 행동에 대한 후회가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상대방이 반복되는 배려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과다한 배려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 알게 된 지 15년 지기 직장동료가 있다. 둘 다 쾌활하고 농담코드도 잘 맞는 우리는 제법 친해진 시점에 처음으로 둘이서 중국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나는 그 친구가 좋아할 꺼라 생각해서 먹고 싶었던 굴짬뽕 대신 쟁반짜장을 선택했고, 그 친구는 내가 좋아할 꺼라 생각해서 깐풍기를 선택했다. 물론 난 깐풍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가 깐풍기가 어떠냐고 물어볼 때 물론 좋다고 흔쾌히 말했다.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에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굴짬뽕과 탕수육이 먹고 싶었다는 것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각자 오해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 그냥 좋다고 했기 때문에 정작 둘 다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의 엄청난 배려 정신이 그런 불상사를 만든 것이다. 의외로 타인에 대한 착각을 우리는 자주 한다.


두 번째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 10여 년 이상 지속되어 온 나와 A, B 3명의 계모임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A와는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B와는 딱히 별다른 감정이 없다. 감정이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안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맞는 부분도 하나 없고 관심사도 전혀 달라서 사실 A가 여행 계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내심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인 A가 원하니까 차마 속마음을 말하지 못했다. 물론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B와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A와 나는 둘이서도 따로 만나는 때가 제법 있는데, 어느 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은근슬쩍 본심이 나와 버렸다. 너 아니었으면 B와 계모임을 안 했을 텐데라고. 아마도 그날따라 맥주를 몇 잔 마셨고, 헤어지는 인사 끝에 실없이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건 A의 대답이었다. A는 내가 B와 친하다고 생각해서 계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한 거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우린 서로를 너무 배려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된 것이다.


내가 굴짬뽕을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면, 깐풍기는 싫다고 말했다면 나와 친구의 사이가 큰 영향을 받았을까? 그날 저녁식사가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원하지 않던 계모임을 처음부터 싫다고 거절했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까? 아무런 일도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의외로 우리의 솔직한 생각을 말해도 내 생각과 달리 다들 아무렇지도 않고 별 영향이 없고 상대방은 그냥 쿨하게 받아들인다. 생각 외로 타인에 대한 우리 각자의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혹시라도 내 솔직한 속내에 상대방의 기분이 나빠진다거나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참 서툴고 어렵다.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배려인지도 헷갈린다. 내 식대로 상대방의 생각을 단정 지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배려를 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걸 수도 있다.


유교문화의 잔재인지, 주입식 교육의 결과인지, 이도저도 아닌 그저 내 개인적 성격의 유형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다. 배려와 소심 그 두 가지의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결과로 몇십 년간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분위기 망치면 안 되니까, 나만 참으면 되지 이렇게 다독이며 50년을 살아온 내 마음이 이제 좀 지쳤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여주인공의 대사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라는 그 말처럼 살고 싶다. 요 몇 년 사이 내 인생의 모토가 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 속에서 하기 싫은 일을 100%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타인을 배려하느라 억지로 꾸역꾸역 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배려랍시고 했던 일들을 굳이 안 해도 세상이 무너지거나 하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기 싫은 일을 더 이상 나는 하기 싫은 것이다. 이제는 타인이 아닌 나를 배려해야 할 시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