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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20240723

by 모래알

살아가는 동안 많은 행사를 치르게 된다. 백일잔치, 돌잔치부터 유치원, 초중고 학교들의 입학식과 졸업식을 거치고 나면 입사식 혹은 개업식을 만나고 드디어 인생의 큰 의미가 있는 결혼식까지 치르게 된다. 크고 작은 다양한 식들을 다 지나면 삶에 있어서 최종 의식인 장례식을 끝으로 한 생이 마무리된다. 불현듯 최종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주인공은 참석하지 않은 졸업식 같으니까.


나는 식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들이 모두 거북스럽고 불편하다. 오죽하면 결혼식도 하기 싫다고 생각했을까.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불필요한 의식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치매로 병원에 10여 년 가까이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친구분들의 연락처를 알 수 없어서 친척분들을 제외한 조문객들은 모두 우리 형제들의 지인이었다. 아버지를 잘 알고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여겨졌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보다 본질,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식장이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조문객들의 숫자나 입구에 놓이는 화환의 개수 같은 것보다는 애도하는 진정 어린 마음이 더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농담처럼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내 장례식은 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어차피 죽은 사람은 모르는데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친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아마도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위한 절차라기보다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형식이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가족이 위로를 받기 위한 시간과 일생일대의 큰 사건을 공표하는 시간 그런 것이 아닐까. 7월 말의 여름휴가 기간과 주말이 겹친 아버지의 장례식날은 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몇 명의 지인들이 연락을 받고 발걸음을 해준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큰 충격의 순간에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이 굉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무조건 의례적인 것은 싫다고 내치기보다는 형식의 도움을 받으면 갖추어져야 할 마음의 농도가 짙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마치 억지로 웃음 짓는 행위가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는 도파민 같은 뇌호르몬들을 분비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절차가 있는 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서 위로의 인사말을 나누는 순간 그것이 진정한 마음으로 완성되어서 전달되는 효과를 준다. 내 삶의 마지막 행사로 장례식을 선택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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