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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의 독립

20231003

by 모래알

올봄에 큰아들이 집을 나갔다. 가출이 아니고 정정당당한 출가, 독립을 한 것이다. 친한 친구와 같이 서울 불광동에 방이 2개 있는 빌라를 월세로 3월에 계약하고 4월에 바로 이사를 나갔다. 1~2년 전부터 종종 집을 나갈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서 또 그러다 말겠지 했더니 이번에는 진짜로 실행해 버렸다. 집도 하루 만에 계약하고, 진행이 속전속결이라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잔소리를 했지만 아들은 그저 행복해하며 집 나갈 생각에 들떠있기만 했다. 하긴 남편이나 나나 대학 졸업하자마자 24살부터 혼자살이를 시작했어서 지금 26살인 아들의 독립은 우리와 비교하면 좀 늦은 감이 있긴 하다. 큰아들이 군대를 가서 18개월 동안 떨어져 산 첫 번째 경험이 있어서 충격이 덜 하긴 하지만 대신 이번의 독립은 다시는 내 인생에서 아들이 함께 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제 정말 내 품을 떠난다는 실감이 난다.


부모가 바라보는 자식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항상 어린아이처럼 느껴져서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데,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나름 꾸며놓은 집 사진을 보면 그래도 잘 사는구나 안심이 된다. 이사 가기 전에는 한번 가보려고 했더니 극구 싫다고 왜 오냐며 질색팔색을 해서 남편과 나는 상처를 좀 받았다. 굳이 선을 긋나 싶기도 하고 벌써 남처럼 구는 거 같아서 참 많이 속상했다. 그런데 정작 이사 끝나고 나서 커다란 운동기구를 가져갈 일이 생기니까 편하게 남편 보고 태워다 달라고 해서 남편은 아들집을 다녀왔다. 별생각 없이 내뱉는 아들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항상 휘둘리게 된다. 곰곰 생각해 보면 나도 집을 떠나고 단독집 2층에 전세로 혼자살 때 부모님이 오셔서 주인집에 인사하는 게 아주 싫었었던 기억이 있다.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부모님의 과도한 관심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 준다는 핑계로 난 아직 아들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정중한 정식 초대를 기다리고 있다. 정 기다리기가 힘들면 넌지시 서울나들이를 핑계로 아들이랑 밥 한번 먹고 와야겠다.


큰아들이 집을 떠난 지 벌써 반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에는 2주에 한번 정도 오더니 최근에는 거의 한 달 반 만에 집에 왔다. 이제는 본인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작게는 내가 쓰는 일회용 수세미부터 크게는 제습기 같은 전자제품까지 어떤 걸 사용하는지 물어보고, 동일한 걸로 사는 모습을 보니 제대로 잘 살고 있구나 하고 흡족한 맘이 든다. 이번에 왔을 때도 청소는 잘하고 사냐고 물어봤더니 바닥이 찐득하다며 스팀청소기를 물어보는 걸 보니 영 엉터리로 사는 건 아니지 싶다. 하긴 내 20대 시절의 자취생활을 떠올려보면 청소는 거의 하지도 않았고 먹는 것도 대충 때우고 매일 일하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는라 남는 시간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를 보면 잔소리할 것들 뿐일 것이다. 그래도 대학졸업 후와 결혼 전의 딱 3년 남짓한 홀로서기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아마 아들도 그런 기분일 거 같다. 집을 나가서 좋냐고 물어보면 항상 배시시 웃으며 너무너무 좋다고 대답한다. 몸은 좀 고달프지만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며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사춘기 전의 어린 나이일 때는 엄마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말도 안 통하는 고리타분한 꼰대로 여겨진다. 소위 머리가 커지면서 그렇게 되는 지극히 정상정인 성장과정이다. 그러면서 말도 잘 안 통하고 불편한 부모에게서 독립을 꿈꾸기 시작하게 된다. 아이들 어릴 때는 독립심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런 식으로 교육하려고 노력했었다. 돌쟁이 때부터 마구 흘리며 먹어도 숟가락질을 혼자 하게 했고 넘어져서 울어도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고 일으켜주지도 않았다. 서너 살부터는 직접 자기 옷을 선택하게 했고, 초등학생 때는 집안일을 해야만 용돈을 주었다. 교육의 효과인지, 아들들의 성격들이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건지, 아니면 XY 염색체의 성향이 그런 건지 두 녀석 모두 심하게 독립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매사 본인의 취향이 확고한 편이라 진로를 선택할 때도 옷 쇼핑을 할 때도 내 의사가 통한 적이 없다. 아들들과 오랜 시간을 거치고 터득한 거라고는 아이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믿고 지켜보자는 결론이다. 사실 이긴 적도 별로 없다.


큰아들이 집을 나가고 나서는 최대한 연락도 자주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혹시나 아들을 귀찮게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기고 조금씩 거리감을 두려고 한다. 이제는 내 품 안의 자식이 아니니까. 아들이 나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들에게서 독립해야 하는 시기이다. 아들은 자신의 길을 출발한 거니까 내가 할 일이라고는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 혹시나 힘들어할 때 도움을 주거나 위로해 주는 것 그런 것 말고는 없는 거 같다. 아들이 아무 때라도 뒤 돌아봤을 때 항상 한 자리에서 반갑게 웃으며 손 흔들어주는 게 앞으로 나의 역할이다. 세상이 모두 돌아서도 끝까지 유일하게 믿어주고 사랑하는 존재로 남는 것이 엄마로서의 내 모습이다. 내 소중한 첫 번째 아기였던 준우야, 우리 각자 자신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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