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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2023.9.20

by 모래알

요즘 건강을 위해서 규칙적으로 하는 운동은 스트레칭, 실내자전거, 산책 3가지뿐이다. 그중 산책이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최소 하루에 한 번, 1시간 이상은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강아지를 1일 1회 산책시켜야 하는 의무감도 산책 횟수를 채우는데 한몫을 한다. 굳이 산책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원래부터 걷는 걸 좋아한다. 지금도 웬만한 거리는 걸으려고 하고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는 것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 생활을 즐긴다. 자동차 운전은 애들 어릴 때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10년 정도 자동차를 끌고 다닌 이후로는 운전석에 앉아 본 적이 없다. 산책이 없는 일상은 상상만 해도 공기 없는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내 산책의 시작은 국민학교 때부터였던 거 같다. 1시간 이상 걸리는 등굣길을 남동생과 “다같이돌자 동네한바퀴” 같은 돌림노래를 크게 불러대면서 걸어가고는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는 친구들과 같이 큰 신작로 길보다는 논두렁길, 언덕길을 찾아다니면서 구불구불 걸어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도 걷는 걸 좋아하는 건 여전했다. 데이트할 때도 한두 시간 이상 걸었고, 직장을 다닐 때에도 점심식사 후 산책은 필수였다. 등산동호회도 했었고, 걷는 시간을 늘리려고 퇴근할 때 서너 정거장 전에 내려서 집까지 일부러 걸어가기도 했었다. 걷는다는 게 나에게는 숨 쉬는 거처럼 꼭 필요한 행위였다.


동네 공원 산책을 하다 보면 계절 따라 다양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봄에는 새끼꿩들이 엄마꿩을 쫓아서 1열로 길을 가로질러 가는 걸 보고는 너무 놀라 흥분했더니, 시골태생인 남편은 그게 뭐가 신기하냐며 심드렁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가고 있는 지금은 배롱나무의 꽃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밤나무는 초록 밤송이가 많이 달렸고 벌써 이파리를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나무도 있다. 아파트 화단에는 모과나무가 3그루 있는데 제법 초록색 열매가 커졌다. 한 달만 더 있으면 작년처럼 노란 모과가 떨어져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여기저기 풀숲을 들쑤시지 싶다. 매일매일 걸어도 지겹지가 않다. 매번 다른 이벤트가 있으니까.


매일 걷는 동네 공원 외에도 가끔씩 가는 코스들이 있다. 최근 1년에 서너 번씩 가는 곳은 인왕산둘레길이다. 서촌과 자하문 사이의 코스를 걸어가면 산이 주는 기운이랄까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둘레길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풍광도 좋고 맛집들도 꽤 있어서 서울나들이 겸 해서 봄, 가을에 가끔씩 찾아가게 된다. 봉은사의 산책로도 좋아하는 길이다. 도심에 있는데도 도심이 아닌 기분을 주는 한적함이 느껴지는 길이다. 익숙한 동네길은 가끔 보여주는 낯선 경치가 반갑고 자주 가지 못하는 먼 곳의 길은 예전 방문했을 때의 동일한 경치가 반갑다.


산책할 때는 걷는 것도 좋지만 중간중간 앉아서 쉴 때의 그 기쁨을 무시할 수가 없다. 최근에는 1시간을 걷는다 하면 최소한 30분은 앉아있는다. 커피나 간식을 잔뜩 챙겨가서 풍경을 멍하니 보며 커피 한잔 하는 시간이 너무 여유롭다. 마음 같아서는 벤치에 누워서 하늘도 보고 한숨 자고 싶은데 아직은 그런 용기는 부족하달까. 몇몇 좋아하는 장소들(나는 혼자 명당자리라고 부른다)이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치 좋은 곳을 나 혼자 독차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 따로 명상이 필요 없다. 요즘 말하는 웰빙이 이런 게 아닐까. 한걸음한걸음 발자국에 집중해서 걷고 고요하게 앉아서 내 맘에 집중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산책은 웰빙의 필수품 같다.


산책의 좋은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둘 다 잡을 수 있는 가장 쉬운 행위일 것이다. 투자할 거라곤 시간만 있으면 되는 가성비 좋은 운동이다. 억지로 걷는다 생각하지 말고 무언가 좋아하는 걸 같이 하면 더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간식을 챙긴다든지 카페를 들러서 커피타임을 즐긴다든지 음악을 듣거나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진다든가 하는 자신만의 기분 좋은 걸 추가하면 된다. 이제 또 걷기 좋은 시기인 가을이 왔다. 좋아하는 인왕산 둘레길도 가보고 동네 한 바퀴도 돌고 단풍놀이도 가고 이래저래 맘이 분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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