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좋은 것들

20240131

by 모래알

1월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동지가 지나고 새해가 시작된 후부터는 차가운 바람에서도 따뜻한 봄냄새가 난다. 계속되는 영하의 날씨 중에도 가끔씩 기온이 오르고 바람도 잠잠하고 거기에 햇살까지 따뜻하면 벌써 봄이구나 싶다. 개천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잔뜩 올라왔고 집 앞의 목련나무도 꽃봉오리가 한가득이다. 메마른 겨울나무와 누런 갈대와 억새들의 풍경 위로 작년에 보았던 벚꽃, 배롱나무, 꽃창포, 개양귀비의 화려한 모습이 겹쳐진다. 슬슬 봉은사 홍매화를 보러 갈 때가 다가온다. 2년 전부터 3월이 되면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로 홍매화를 보러 간다. 고층빌딩 가득한 뒤쪽 나지막한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작은 절인 봉은사. 친구와 같이 우연히 한번 들렀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너무 좋았던 기억 때문에 가끔 그 근처 갈 일이 있으면 들러보게 된다.


내 맘에 든 곳은 봉은사라는 절보다는 홍매화를 지나 왼쪽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산책로이다. 자그마한 동산인데도 산책로를 들어서는 순간 도심의 소음은 사라지고 깊은 산속에 온 거 같다.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온통 빌딩들, 서울 한복판의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번잡한 도시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내려다보면 시끄럽던 맘이 조용하게 가라앉는다. 처음 봉은사를 갔던 날은 친구도 나도 모두 힘든 시간이었다. 친구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힘들어했고, 나는 심각한 번아웃의 시간을 견뎌내느라 혼자 헤매던 때였다. 아직도 그날 같이 나란히 앉았던 작은 나무판 의자가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날의 고요한 시간이 우리 각자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으리라. 그다음 해에도 우리는 같이 홍매화를 보러 갔다.


점점 찾아가는 장소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거나 옛 동네의 향수를 건드리는 곳이다. 인왕산 둘레길이나 봉은사 산책로, 올림픽공원, 서울숲, 광교호수공원 같이 초록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좋다. 북촌이나 서촌, 익선동 같은 낡은 건물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꼬불꼬불한 곳도 좋다. 인생의 반을 아파트에서 생활해서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좋으면서 아련하게 맘을 건드리는 것이 있다. 얼마 전에는 전기버스를 타고 가는데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전기차가 엔진소리가 안 나서 너무 조용하니까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 나는 소리라고 한다. 철길 건널목에서 들렸던 종소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건널목 앞에 차단기를 마주하고 서 있는 9살 가시내가 된다. 가을 저녁 아궁이에 밥 짓느라 볏짚을 태우는 냄새처럼 따뜻하고 그리운 소리이다.


작년 가을 우연히 들어선 창덕궁 옆의 서순라길에서 만난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한옥스타일의 어느 주점 툇마루도 너무 좋았다.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골목길, 마루에 앉아 창덕궁의 높은 담벼락에 핀 흔하지 않은 보라색 나팔꽃을 신기해하며 보았었다. 그러고 보면 툇마루에 앉아본지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에는 마루가 있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마루도 구경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 시절에는 마루나 마당 한가운데 평상은 항상 기본옵션이었다. 어떡하다가 우리는 예전의 모습들을 모두 잊어버린 걸까? 그날 이후로 갑자기 안방 베란다에 마루를 짜 넣는 건 어떨까, 아니면 안방창 밑에 마루를 만드는 건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그건 마루가 아니겠다 싶었다. 소파하고 다를게 뭔가.


가끔 거실창을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만약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창밖 경치를 보다가 나가고 싶으면 바로 창문을 열고 나가면 된다. 뚱이는 하루종일 마당이나 마루에서 신나게 놀테고. 아파트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나에게는 마당과 마루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감이 있다. 땅을 밟으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편리함과 즐거움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상상하는 마당은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공간이어야 한다. 밀폐된 공간에 길들여진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안을 들여다본다거나 내가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다. 예전에 테라스하우스 모델하우스를 가본 적이 있다. 아파트의 베란다보다 2~3배 더 넓은 테라스를 마치 마당처럼 꾸며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에 방문했다. 그런데 막상 본 순간 저층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일 거라는 생각과 옆집과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테라스를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맘을 접었다.

이제는 상자와 같은 집에 사는 것에 적응이 되어서 사적인 공간을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외국처럼 발코니가 있는 건물들이었다면 좀 더 편하게 옆집사람과 발코니에서 인사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밀폐된 성격의 주원인제공자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건물구조일 수도 있겠다. 공원도 좋아하고, 오래된 동네도 찾아가서 구경할 정도로 좋아하지만, 지금 살고 있고 계속 살고 싶은 곳은 편리한 현대식 건물, 이제는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각형의 아파트이다. 지붕 밑 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고 처마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싶지만 마루를 놓을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일까? 학교를 정말 싫어했는데 직업이 선생님이 되어버렸다고 하시던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처럼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때가 되면 연신 나들이를 다니게 되나 보다. 익숙한 현실을 떠나 온몸으로 봄을 풍기는 봉은사 홍매화를 보고 오면 또 한두 달은 다독이며 지낼 수 있는 건지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큰아들의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