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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만들려고요

202308

by 모래알

49살이 되고 이런저런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이 나이 될 때까지 지금껏 뭐 하고 살았나 싶고 지나온 시간들이 참 헛헛하달까. 원래 하던 개발자 일은 돈벌이 수단으로만 느껴져서 허무했다. 남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 의지로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건 뭐가 있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걸 하자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예전부터 막연하게 나이 들면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맘속 깊숙이 가지고 있었다. 고민 끝에 50살이 된 기념으로 내가 쓴 시와 내가 그린 그림이 들어있는 작은 책 한 권 정도 만들기로 결심했다.


시를 쓴다고 혼자 몇 번 긁적여댔지만, 그다지 잘 되지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흐지부지 돼버렸다. 도저히 혼자는 안 되겠다 싶어 글쓰기수업이나 모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신도 없어서 어영부영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우연히 “퇴근 후 독립출판”(구선아, 리얼북스)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다시 한번 책을 한 권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만들고 싶다는 결심이 들었다. 이제 내 목표는 55세에 내 글과 그림으로 채운 책 한 권을 독립출판하는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결심하자마자 바로 글쓰기 수업들을 찾아봤다. 마침 가까운 백화점 문화센터에 시와 수필 창작 수업이 있었다. 시가 상대적으로 글자수도 적어서 훨씬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시절 한때 시를 긁적였던 기억, 국민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시인이 되라는 칭찬도 떠올랐다. 아버지가 중학교입학선물로 사주신 김소월시집 등 어릴 적 시에 관련된 이런저런 추억이 떠오르면서 나에게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시창작 수업을 신청했다. 한번 부딪쳐보고 아니면 다시 다른 걸 해보면 되지 하고 편하게 맘먹자고 스스로 다독이는 중 드디어 첫 번째 날이 되었다.


그날은 지금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태어나서 처음인 시 수업, 교수님이 기성시인들 시를 가져와주셔서 설명해 주시고 다들 감상이나 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각자 습작한 시들을 읽고 교수님의 첨삭지도 후 또 같이 이야기하고. 그 시간은 마치 강의실 안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기운, 글자들이 공기 속에 유유하게 흐르고 온화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랄까. 첫 수업을 듣자마자 너무 잘 선택했다고 설레었으며 그날의 따뜻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수업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났지만, 매주 돌아오는 시수업은 여전히 매우 즐겁다. 시 쓰기는 처음 생각처럼 만만하고 쉽지 않지만 그래도 시 한 편 완성하고 차곡차곡 내 시들이 쌓여가는 걸 보면 뿌듯하다. 너무너무 좋아서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도 많이 했었다.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해소도 되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는 부분도 있는 거 같다고 여기저기 권하고 다녔지만 역시 쉽게 도전할 것은 아닌지 나를 따라 신청한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수업을 계속 듣다 보니 시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도 있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지금은 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주 좋아하지만 몇 년 지나서도 여전히 시인이고 싶어 할지. 싫증을 잘 내는 성격과 몇 년간 배우던 그림을 그만둔 경험을 생각하면 사실 좀 불안하다. 게다가 처음에는 멋모르고 좋아했지만,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지는 게 시인 거 같다. 어떤 날은 공연히 왜 이런 골치 아픈 걸 시작했나 싶기도 했다가 또 어떤 날은 하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로 채우며 뿌듯해할 때도 있다. 오르락내리락 조울증 환자처럼 혼자 기뻤다 혼자 우울했다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글쓰기의 매력을 알아버려서 인제 이 재미있는 것 없는 공허한 삶을 못 살지 싶다. 부디 지금의 마음을 잘 간직해서 쭉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생을 자신할 수 없어서 그냥 55세 책 한 권 출판을 목표로 한걸음한걸음 느릿느릿 가야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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