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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강박

20240416

by 모래알

보홀의 해안가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며 여유로운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해변을 지나갔다. 연령대도 제각각이고 나라도, 옷차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얕은 바다에서는 수영복 차림으로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다들 그냥 편하게 배가 나오면 배가 나온 데로, 뚱뚱하면 뚱뚱한 데로 아무렇지 않게 비키니나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다닌다. 상대적으로 내 옷차림은 상의는 지퍼를 목까지 올린 래시가드 점퍼이고 하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키니에 반바지차림이었다. 목에서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감싸고 있는 차림이었는데 불현듯 수영복을 입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놀이할 때 햇볕에 타지 않기 위해서 래시가드를 입는 것도 있지만, 몸매가 드러나는 게 불편한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어디를 가든 바닷가를 갈 때는 무조건 래시가드를 입는다. 수영복을 입었을 때 몸매가 드러나는 게 창피한 일이라고 여긴다. 왜 창피한 것일까 스스로 반문해 보면 완벽한 몸매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스스로 몸매가 나쁘다고 판단하고 수영복을 입지 못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몸매가 예뻐야만 한다는 생각을 왜 하게 된 걸까? 예쁘지 않은 몸은 창피하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된 걸까? 무의식 중에 자리 잡은 완벽 강박이 있는 게 아닐까? 완벽한 모습만 의미가 있고, 좋은 것으로 인정하고, 100점만이 가치가 있다는 기준을 잡고 살아온 건 아닐까? 어릴 때부터 경쟁이 심한 사회를 지나오면서 확립된 생각인 걸까? 무의식적으로 흡수되어서 자리 잡은 생각, 타인의 시선으로 옳고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너무 치우쳐져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내 몸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단지 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항상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리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나를 질책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내면에 20%쯤 움푹 파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오십에 읽는 주역-강기진) 왜냐하면 반대 방향으로 도드라진 장점이 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리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완벽한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공평하게도 우리들은 모두 제각각 삐뚤어지고 어딘가 불균형적인 부분이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고 물론 완벽을 추구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완벽을 추구하기 이전에 먼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게 먼저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잘하고 어떤 점이 아쉬운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깊숙이 들여다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문명의 삶을 쫓아가느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라 꾸역꾸역 달리느라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나를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자. 슈퍼모델 같은 몸매가 아니어도 미인의 얼굴이 아니어도 노래가 음치여도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자.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의 완벽하지 않은 나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존재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최근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1년 동안만 흰머리가 나도 그냥 놔두고 염색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염색을 하지 않은 내 머리가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어졌다. 벌써부터 주변의 친구들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일 거라고, 더 추레해 보일 꺼라고들 한다. 하지만 또 그러면 어떠냐 싶기도 하다. 타인에게 더 예쁘게 보이고 싶고 더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이전에 내 진짜 모습을 만나보고 싶다. 어쩌면 매번 내 진짜 모습을 만나기 위해서는 항상 주변시선이라는 허들을 뛰어넘어야 할지도 모른다. 허들을 하나하나 넘어설 때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자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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