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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면

240206

by 모래알

따뜻한 햇살 아래 한 손엔 커피, 다른 한 손엔 강아지 리드줄을 느슨하게 쥐고 사람도 강아지도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 그림이나 사진 속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모습은 참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워보니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강아지를 산책시킨다는 행위는 거의 노동에 가깝다. 산책하는 내내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 된다. 쓰레기나 고양이 배설물, 토사물을 보게 되면 강아지가 먹지 못하게 서둘러 피해야 한다. 고양이나 까치 같은 작은 동물을 만나게 되면 사냥개 본능이 살아나서 마구 달려들 수 있으므로 리드줄을 더 짧게 잡고 강하게 끌고 가야 한다. 좁은 길을 걸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게 더더구나 신경 써야 한다. 강아지가 땅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기 시작하면 더러운 것들이 있는지 연신 확인한다. 그러고 보면 겉으로는 화려하고 멋있고 부러워 보였던 것이 속은 우아한 백조의 발차기처럼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다나 산으로 여행을 가서 멋진 풍경에 감탄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늘 보는 경치여서인지 별 감흥이 없다. 게다가 그 풍경 속이 바로 삶의 터전이기도 해서 하루이틀 잠깐 바라보는 여행자의 눈과는 달리 마냥 예뻐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마치 SNS에 올라온 보여주기식 사진과 실제 삶의 모습 사이의 간극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 멋진 풍경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사람은 스쳐가는 여행자들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모든 계절을 다 겪고 오랜 세월을 같이 동거동락한 사람만이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아픔까지도 품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말이다. 겉핥기가 아닌 본질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사는 모습을 밖에서 들여다보면 행복한 가족사진처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인다. 그렇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다들 힘겨운 아픔이 하나 이상은 존재한다. 돈이 차고 넘치는 재벌에게도,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에게도 예외 없이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아픔을 겪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경중을 따질 수가 없다. 나만 힘들고 네 것은 별거 아닌데 왜 그러냐는 말은 무례한 표현이다. 우리는 타인의 입장을 100%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아픔 또한 완벽하게 공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그럴 수 있다고 최대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며 예의일 것이다.


한때는 나만 혼자 힘든 삶을 사는 것 같아 더 외롭고 괴로웠던 시간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모든 사람이 삶 속에 힘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만이라는 피해의식은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예전에 나보다 서너 살 어렸던 직장동료가 차장님은 걱정거리 하나 없어 보인다고 말해서 섭섭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수년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초등학생인데도 챙겨줄 사람이 따로 없어 직장과 육아로 혼자 동분서주했던 시기였다. 다들 타인의 삶을 예쁜 포장지에 싸여있는 선물처럼 바라보는구나 하고 씁쓸해했었다.


찰리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다들 마음속에 아픔 하나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 이제 20대인 아들들을 보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고생스러운 나날들이 안쓰럽고,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지나온 아픔의 상처를 가슴속 한편에 남겨두고 있어서 안쓰럽다. 앞으로 또 우리 삶에 파도가 덮칠 일이 있겠지. 이래저래 우리들은 모두 다 불쌍한 존재들이다. 나만 너무 힘들게 산다 생각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각자의 아픔도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이지 않을까. 안개가 자욱할 때는 신비스럽던 풍광이었던 곳이 막상 해가 나타나면 폐허가 된 건물로 드러나서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그 폐허 속에서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새 도시가 건설되기도 한다. 새옹지마의 인생, 아프고 힘든 시기를 만나더라도 좋은 날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또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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