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7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우리 부부 앞으로 보험을 가입했었다. 남편은 42살, 나는 37살의 나이였고, 설계사는 그 보험 하나면 거의 모든 게 다 커버될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처음 가입한 당시의 보험료는 매달 14만 원이었고, 당시에는 그 정도면 적당한 금액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5년마다 보험료가 인상되었고, 급기야 올해는 52만 원이 되었다. 처음 가입한 보험료의 거의 4배가 된 셈이다. 요 몇 년 동안 TV에서 실비보험료가 너무 많이 인상되고 있다는 뉴스를 간간히 들었을 때만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졌었는데 그게 바로 내 얘기였다. 매달 52만 원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하다 싶어서 설계사에게 연락도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매사 가만히 놔둔다고 저절로 풀리는 문제는 없다. 항상 자신의 문제는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
처음에는 그냥 설계사만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기대를 했다. 결론은 너무 금액이 오른 특약은 해지를 하고 새로 보험을 다시 가입해야 한다는 거였다. 게다가 설계사들의 말은 다 조금씩 달랐고, 결국 최종 선택을 해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사실 너무 오른 특약을 해지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50대인데 다시 또 새로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보험은 더 이상 가입할 필요 없이 잘 준비해 두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거 하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설계사는 아무런 미안함 없이 다시 또 이런저런 보험 상품을 들이밀어댄다. 나만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게 여겨지는 걸까?
사실 주변에 지인들이 큰 병에 걸리고 나서 보험 가입을 안 했다 할 때 내심 나는 안전하게 다 준비를 했다고 혼자 자신만만했었다. 나름 꼼꼼하게 잘 챙겨두었다며 자신을 너무 과신했었나 보다. 자신을 너무 믿은 내 경솔함과 15년이 흐르는 동안 왜 한 번도 챙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몇 년만 더 빨리 챙겼어도 지금보다 더 젊은 나이일 때 다시 보험을 들 수 있는 건데 말이다. 돈 때문에 화가 났다기보다는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무신경하게 내버려 둔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52만 원으로 오른 보험료도 5개월이나 지나고서야 알아차린 내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며칠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열에 받혀서 새벽에도 혼자 잠 못 자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곤 했다. 그러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남편과 나 둘 다 한 번도 큰 병이나 큰 사고 없이 잘 지내왔구나 싶었다. 주변에 보험을 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암에 걸렸거나 다른 큰 병으로 수술을 한 경우였다. 우리는 다행히도 아직은 큰 탈없이 무사히 잘 보낸 거구나 하고 도리어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지나간 상황은 어쩔 수 없으니 잊어버리고, 앞으로 남은 생의 보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쓸데없이 꼼꼼한 성격의 나는 요즘 다시 보험 공부를 하고 있다. 결국 내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수수료만 생각하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진 탓도 있다. 나이가 많아졌다는 핑계로 넋 놓고 앉아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기운이 없다고 생각하기 귀찮다고 내팽개친다고 해서 누군가가 대신해 줄 사람은 없는 거다. 아, 물론 대신해 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수료를 받고 해주는 보험설계사처럼. 하지만 내 인생을 나만큼 진지하고 깊게 고민해 줄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고,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결국은 나 혼자이다. 삶을 만만하게 보고 느슨해진 나를 다시 한번 반성하며 매사 진심으로 서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