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림과 뭇국

20240528

by 모래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살림살이가 빠듯했었다. 그 당시 과장이었던 남편의 월급은 두 아들의 교육비와 4인가족의 생활비로 아껴 쓰면 딱 알맞은 정도였다. 게다가 남자아이 2명의 먹는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귤 한 박스가 3~4일이면 사라졌고 아침식탁에 올려둔 바나나 한송이는 저녁이 되면 껍질만 남았다. 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웬만하면 아이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었고, 성장기 아이들을 위해 영양소도 최대한 고려해서 밥상을 차렸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슈퍼가 문 닫을 시간쯤 가서 저렴한 가격으로 장을 보기도 했고, 떨이로 파는 야채는 한꺼번에 박스채 구입하기도 했다. 대량구입한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해서 요리를 하면 식비도 절약되고 하나의 재료가 여러 개의 반찬이 되어서 상차림이 더 풍성해졌다.


가족들 모두 잘 먹는 반찬 중에는 소고기장조림이 있다. 남편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좋아하는 메뉴이다. 가격이 비싸서 자주는 못해먹고 가끔씩 만들어준다. 장조림을 만들려고 하면 일단 핏물 뺀 고기를 압력솥에 푹 익힌다. 결대로 찢어지는 삶은 고기에 간장, 설탕 등 양념을 더하고 달걀, 메추리알, 다시마, 꽈리고추 등을 넣고 약한 불에 올려놓으면 짭짤한 장조림이 완성된다. 그런데, 어느 날 왠지 고기삶은 물을 다시 장조림에 다 써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푹 익힌 고기는 따로 건져내고 남은 고기국물에 무와 다시마를 넣어서 소고기뭇국을 끓이게 되었다. 건져낸 고기는 깨끗한 물과 양념을 넣어서 장조림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장조림에는 비계기름이 안 생겨서 좋고 값비싼 소고기로 훌륭한 2가지 반찬이 만들어져서 일석이조이다. 나름 나만의 알뜰비법인 셈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다들 성인이 되어 먹는 양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변함없이 장조림을 만들 때 뭇국을 같이 만든다. 작은 아들이 왜 소고기뭇국에 고기가 없냐고 한마디 하길래 고기를 몇 조각 추가해서 전보다는 넉넉한 밥상으로 탈바꿈했다. 예전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여전히 소고기는 자주 사 먹는 재료가 아니다. 소고기 한 덩이를 가지고 고기는 장조림으로, 육수는 국의 국물로 쓰이는 것처럼 하나의 재료가 다양한 요리법으로 아예 다른 반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흔하게 먹는 김치의 재료인 배추만 해도 배추된장국, 배추나물, 배추전, 배추쌈 등 여러 모습이다.


사람들 사는 것도 시절에 따라, 모임에 따라 각각의 모습이 달라진다. 20대, 30대, 40대 나이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역할이 바뀐다. 항상 주인공일 수는 없는 것이다. 때로는 육수 역할도 해야 하고, 어떨 땐 꿔다논 보릿자루 같은 장식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메인의 위치가 아니어도 모두 다 필요한 존재이다. 맛있는 뭇국을 만들려면 소고기 국물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들은 모두 표 나지 않아도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요리재료와 같다. 그냥 맛있는 소고기면 되는 것이다. 좋은 소고기면 고기도 맛있고 육수도 맛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좋은 소고기만큼만 한 사람이면 좋겠다. 요리에 골고루 어울려지는 존재이면서도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재료인 소고기처럼. 돌고 돌아 결국은 본질이다. 어떤 자리에 있든지 보이는 모습이나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원적인 내면이다. 내면의 힘을 키우고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걸어가고 있는 진행형. 어차피 금방 이루어질 소원은 아니다. 오늘 저녁은 오래간만에 소고기장조림과 고기 없는 소고기뭇국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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