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젓갈

202410

by 모래알


단풍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10월 중순 강화도로 향했다. 기대했던 단풍구경 대신에 밴댕이회무침을 먹는 것으로 여행은 끝났다. 비릿하고 짭짤한 바다음식을 보면 환장하는 나에게 밴댕이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부산출신이라 그런지 밴댕이나 멸치젓갈 같은 비린내가 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특별히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멸치젓갈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마치 불현듯 떠오르는 첫사랑처럼.


고등학생 무렵 햇살 따뜻한 봄날, 5월의 일요일이었다. 좁은 골목에 멸치를 파는 아저씨의 목청 높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오후였다. 할머니는 부리나케 대문 밖으로 나가서 리어카에 실려있는 멸치들을 이리저리 뒤적뒤적 살펴보시더니 두어 궤짝을 샀다. 거친 나무짝을 가득 채운 큼직한 생멸치들, 햇빛 아래 반짝반짝 눈부시던 푸른빛과 은빛으로 마당이 더 환해졌다. 신선한 멸치와 굵은소금만 있으면 멸치젓갈 완성이었다.


그날 저녁 밥상은 푸짐했다. 자작하게 끓인 빨간 멸치찌개와 다진 청양고추를 버무린 생멸치를 상추에 싸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진수성찬이란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저녁이었다. 젓갈 담그는 날은 마치 잔칫날처럼 시끌벅적하고 풍성한 하루였다. 맛있게 담근 젓갈은 초겨울 맛있는 김장으로 완성되니 집안의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종일 할머니 뒤꽁무니를 부산스럽게 따라다녔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날, 배부르고 등따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하루였다.


여전히 나는 멸치젓갈을 좋아한다. 지치고 몸이 힘들 때나 입맛이 없을 때면 고춧가루를 툭툭 뿌린 멸치젓갈을 쌈장 삼아 양배추나 물미역 혹은 다시마를 싸 먹으면 금세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온다. 큰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할 때도 생각나는 유일한 음식은 비릿한 멸치젓갈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속 가득 침이 고인다. 멸치젓갈은 나에게 고향이며 할머니의 사랑이며 깊은 밑바닥에 뿌리 박혀있는 그리움이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야 달릴 수 있듯이 내 삶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음식이며 단순한 먹거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이다. 나에게는 멸치젓갈이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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