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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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알

큰아들이 독립을 하고 한입 줄었지만 남은 세 식구의 하루 세끼 식사준비는 언제나 고민이다. 오늘은 뭘 해서 먹나 라는 주제는 모든 주부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매번 비슷한 메뉴가 반복되는 게 싫어서 가끔은 색다른 변화를 줄려고 한다. 늘 먹는 뻔한 요리 말고 어디 식당에서 먹었던 것 혹은 TV에서 나왔는데 맛있어 보였던 것들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식단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가끔 가족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묻고 될 수 있으면 각자 주문하는 음식들을 해주려고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작은 아들이 뜬금없이 스팸을 사달라고 한다. 갑자기 먹고 싶대나 뭐라나.


스팸이라니 언감생심이다. 지금까지 내 돈 주고 스팸 따위를 사 본 적이 없다. 한때는 먹거리에 있어서는 무척 엄격했었다. 이미 이십여 년 전에 생협에 가입해서 국내산 무농약이나 유기농 제품만 구매했고 가족모두 인스턴트식품은 최대한 금지였다. 지금도 아들들은 엄마가 사이다나 콜라, 과자를 사주지 않았었다며 원망을 하곤 한다. 게다가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입맛도 옛날사람 같아서 햄이나 치즈, 케이크, 빵 같은 먹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누가 생일선물로 케이크를 보내면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은 걱정에 한숨부터 난다. 원래의 식성도 그런데다가 아들들에게 몸에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맘이 강했었다. 그러니 스팸 같은 걸 굳이 돈 주고 살 일은 아예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웬만한 반찬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오징어튀김과 돼지고기에 식빵을 직접 갈아 만든 빵가루를 묻힌 수제돈까스는 아이들이 좋아하던 메뉴였다. 외식도 최대한 안 하고 인스턴트도 멀리했지만, 그게 참 만만치가 않았다. 청개구리 같던 남편은 날 화나게 하고 싶어 그런 건지 일부러 퇴근길에 수시로 콜라나 라면을 사 와서 복장 터지게 했다. 게다가 주변의 또래친구들이 맛있게 사 먹는 군것질거리를 아이들에게 일절 사주지 않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처음의 굳은 결심은 점점 흐릿해졌고 피자나 치킨 같은 음식을 자주 먹게 되었다. 스팸도 직접 산 적은 없지만 명절선물로 들어오면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구워주고는 했다.


편한 것에 점점 길들여져 지금은 냉동식품이나 인스턴트, 밀키트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제 주방에는 컵라면, 햇반이 박스째 있고, 냉동실에는 돈까스, 피자, 치킨, 빈대떡, 육개장 등 아무 때나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여전히 남편은 한결같이 탄산음료를 꼬박꼬박 사 와서 빈자리를 메꾼다. 어느 순간 나도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지, 고생은 그만 하자라고 편하게 자신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이쯤이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인스턴트를 좋아한다고 말이다. 사실은 인스턴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힘들게 식사를 준비하는 게 싫어진 것이다.


어차피 같이 사는 사람들은 집밥보다 공장에서 만든 것들을 더 맛있어하고 조미료가 팍팍 들어간 식당음식도 좋아한다. 나는 여전히 집밥을 좋아하지만, 대충 편하게 한 끼 때우자는 유혹에 매번 진다. 옹고집처럼 하나만 고집하기가 참 힘들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먹어야 하는 수고로움과 시간적, 육체적 소모 대신에 몸에는 덜 좋은 간편 식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점점 타협을 하게 되나 보다. 좋게 포장하자면 융통성 있는 모습으로 변하는 거다.


몸에 좋은 먹거리를 일부 포기하는 대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걸로 균형을 맞추어 가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음식 만들기에 집착을 해서 스스로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건강해질지 모르지만 정신은 황폐해져서 결국 부메랑처럼 신체건강에도 악영향이 되지 않을까. 애써서 하는 일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 이치다 노리코) 무리해서 고집부리지 않고 적당히 집밥과 인스턴트 사이를 잘 조절해서 여유 있게 살면 되겠다. 작은아들이 원하던 스팸을 사서 맛있게 구워 한 끼를 잘 해결했다. 물론 25% 라이트 스팸이어서 그나마 조금 덜 짠 걸로 산건 아들에게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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