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장아찌

20240618

by 모래알


평년보다 더 빨리 찾아온 폭염의 날씨로 아직 6월 초순인데도 연일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들의 연속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6월 초에는 청매실을 구입해서 매실장아찌를 만들고, 6월 말 경에는 황매실로 매실액을 담그곤 한다. 청매실은 껍질의 색깔이 초록색이고 과육이 단단해서 장아찌로 담그면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다. 황매실은 청매실을 더 익혀서 수확하는 것으로 노르스름한 색깔에 과육도 부드럽고 신맛이 덜하며 단맛이 더 강해 매실액이 더 맛있다. 올해는 작년에 만들어둔 매실액, 매실장아찌가 꽤 많이 남아있어서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큰아들이 독립해서 입 하나 줄어든 영향이 크지 싶다.


매실액은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쯤부터 담그기 시작했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만들어 온 셈이다. 사실 매실액은 설탕과 매실을 1:1로 통에 넣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매실을 씻고 꼭지를 빼는 일이 조금 번거로운 정도다. 설탕과 함께 켜켜이 쌓아둔 매실액에서 3개월 지나면 매실을 건지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청매실의 씨에 독성이 있어서 꺼내주어야 하고, 매실액도 1년 이상 숙성해서 먹는 것이 더 맛있고 몸에도 좋다. 매실액은 만드는 법도 간단하고 가족들이 모두 잘 먹어서 해마다 잔뜩 만들어둔다. 더운 여름에 매실액에 시원한 얼음을 넣어 음료수처럼 마시기도 하고 체하거나 설사병이 났을 때 소화제 대신 물에 타서 먹는다.


만드는 법이 간단한 매실액에 비해 매실장아찌는 손으로 매실을 하나하나 칼로 쪼개어야 해서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만들 엄두도 못 내다가 4년 전 여름에 처음 도전을 했다. 평일날 택배가 도착해서 퇴근 후 집안일이 얼추 다 끝난 밤 10시경 매실을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설픈 칼질이었지만, 어느 순간 제법 익숙해져서 속도가 났다. 그래도 다 정리하고 나니 거의 새벽 3~4시쯤이었지 싶다. 잠깐 쪽잠을 자고 회사출근을 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밤새 매실장아찌를 만드느라 힘들었다고 하소연 겸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중이었다. 같이 일하던 띠동갑 아래의 김과장이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한마디 하는 거다. 굳이 그걸 왜 혼자서 했느냐며 답답한 사람을 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뭐라고 내가 얼버무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질문만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나는 매사 혼자서 하는 것에 익숙하다. 아마도 장녀여서일 수도 있고 독립심이 강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믿고 의지를 할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서일 수도 있겠다. 어릴 때부터 혼자 하는 것에 익숙했고, 결혼 전 3년 정도 부산 본가를 떠나 수원에서 혼자 살면서 그 독립심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아마도 남편을 의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의 야근 아니면 회식이었고 어쩌다 일찍 온 날도 밤 9시는 훌쩍 넘겼다. 게다가 옛날 사람인 남편은 회사가 가정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큰아이가 2돌도 안되었을 때 평소 잘 아프지 않던 내가 꽤나 심한 몸살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다. 마침 남편이 쉬는 토요일이어서 어지러운 몸을 끌고 병원에 갔더니 링거를 권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링거를 맞고 겨우 집으로 온 나에게 남편은 돌쟁이 아들을 맡기고 급한 일이 있다며 출근을 하는 거다. 와이프가 아파서 결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낼 테지만, 그때는 툴툴거리면서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어느새 매사 혼자서 감당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 걸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것들은 모두 핑계일지도 모른다. 남편에게나 타인에게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색한 성격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그리고 오랜 시간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혼자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돼버린 것이다. 나의 가족, 지인들에게도 그런 내 모습이 익숙할 테고. 띠동갑 김과장의 질문이 지금까지의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왜 항상 혼자 하려고만 했을까.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같이 하자고 해도 되었을 텐데. 남편도 언제나 혼자 하는 와이프의 모습에 익숙해져서 밤늦게 앉아서 매실을 까는 나를 도와줄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말이다.


굳이 싫다는 남편에게 시키지 않고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해결하는 내 모습이 지금은 견딜 만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게 되면 힘에 부칠 것 같다. 친구들과도 가끔은 도움을 요청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단번에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같이 하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집안에서는 일단 남편에게 많은 것을 같이 하자고 하고 있다. 첫 번째 매실장아찌를 담그고 그다음 해부터는 남편과 같이 장아찌를 담근다. 의뢰 그렇듯이 말로는 하기 싫다 그냥 사 먹자 투덜대지만 결국은 나란히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몇 시간씩 매실을 쪼갠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남편이 나보다 더 잘한다. 올해는 매실장아찌를 담그지 않아서 남편의 큰 일거리 하나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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