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6
작은 아들이 7월 말에 친구들과 부산여행을 간다고 했다. 여행출발하기 일주일 전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2박 3일의 일정에서 이틀째 저녁 친구들과의 약속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로는 아무런 스케줄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숙소도 첫날 하루만 예약했고 둘째 날은 아직 예약하지 않았다고 했다. 갑자기 내가 호텔을 이틀밤 예약하고 여행의 둘째 날 부산으로 내려가서 합류를 하면 어떨까 하고 충동적으로 물었다. 아들은 숙소를 하루 해결하고, 나는 아들과 1박 2일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망설임 끝에 아들은 마지못해 승낙을 했고 나는 맘이 바뀌기 전에 얼른 숙소와 기차를 예약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식당과 먹고 싶던 음식들을 먹는 즉흥적인 먹방여행계획을 잡았다. 자갈치에서 꼼장어, 고래고기를 먹고, 남포동에서 완당, 충무김밥을. 부전시장에서는 무를 넣은 떡볶이를, 동래에서는 파전과 금정막걸리를 먹는 것으로 리스트를 완성했다.
아들의 3일 차 여행이자 나의 2일 차 여행 첫 번째 메뉴는 완당으로 정했다. 완당은 만두와 비슷한 음식인데 투명하게 비쳐 보일 정도의 아주 얇디얇은 사각형의 만두피를 사용하고, 만두소의 양이 거의 엄지손톱만큼이나 아주 작다. 완당은 만두소 맛보다는 그 만두피의 부들부들한 맛이 특이하다. 유례를 찾아보면 그 시작은 중국의 만둣국인 ‘훈뚠’, 광둥지방에서나 홍콩에서의 ‘완탐’이라고 한다. 이후 ‘완탐’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완탕’으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일본식당의 ‘완탕’ 만드는 법을 배운 사람이 1947년 부산에 포장마차를 개업해 처음 완당을 판 것이 그 효시라고 한다. 완당 가게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사실 부산 사람들도 완당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딱 한번 아빠와 같이 먹었던 경험이 있다.
정확하게 몇 살 때였는지, 계절도 그날의 날씨도 외출의 목적조차도 잊어버렸다. 단지 기억하는 거라고는 아버지와 같이 부산극장이 있던 남포동으로 갔었다는 것뿐이다.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데려간 곳은 극장가 근처 건물의 2층이었고, 식당은 바닥도 천장도 식탁도 창틀도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나무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도 고등학교 시절 와서 먹었던 음식이고 너무 맛있다며 완당을 한 그릇 시켜주셨다. 그날 생전처음 먹었던 완당의 그 부드럽고 미끄덩한 맛이 낯설었고 그다지 맛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아니면 그날의 외출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다. 나오기 싫은데 아마도 평소처럼 강압적인 아버지의 고집에 억지로 끌려 나왔을지도. 그 이후로는 완당 집을 가지는 않았던 걸로 봐서는 아버지는 내가 완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신 듯하다.
다시 찾아간 완당 집은 여전히 위치는 남포동이었지만, 내 기억과 달리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가게내부는 짙은색 나무로 꾸며져 있어서 예전과 흡사했다. 작은아들과 나는 완당을 한 그릇씩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얘기하며 이런저런 감회에 젖었다.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넌지시 예전에는 2층에서 먹었었다고 했더니 원래는 1,2층에서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고 제대로 잘 찾았구나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그 식당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얼까. 사실 완당을 처음 먹었을 때 너무 맛있다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생각나는 거라고는 그 미끄덩한 만두피의 느낌뿐이고 나머지는 그냥 그랬다. 잊지 못할 아주 행복한 시간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나는 거의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들은 오히려 싫었던 경험이 더 오래 남는 게 아닐까라고 한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다시 먹어본 완당은 그리운 맛이었다. 딱 한입 먹는 순간 그래 이맛이다 싶었고 여전히 부드러운 완당 피는 호로록 한입에 쑥 넘어갈 정도였고 멸치국물맛도 예전과 같았다.
기억이라는 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발견되는 조각 같다. 지나간 조각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을 쿡쿡 건드리며 애틋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다시 먹은 완당이 맛있는 이유가 아들과 함께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입맛이 바뀌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들도 맛있게 잘 먹어서 보기 좋았다. 아버지와의 추억 위에 아들과의 추억 하나를 돌탑 위에 돌 하나 올려놓듯이 쌓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한참 후에 내가 완당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들도 훗날 언젠가 나와 먹었던 완당을 떠올리려나. 아들은 굳이 자신이 기억을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미리 엄포를 놓는다. 나중에라도 이 글을 읽으면 그날의 추억을 혹시나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얄팍한 욕심으로 이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