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
주말에는 산책도 하고 책도 볼 겸 일석이조로 집 근처 도서관으로 슬슬 걸어가고는 한다. 8월 어느 주말, 그날따라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시원하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도서관을 찾기로 했다. 20여분 거리에 있는 광교홍재도서관으로 출발했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는다. 집중이 잘되어야 하고 밖을 볼 수 있는 창이 있어야 하고 의자가 편안해야 한다. 자리를 정하고 나면 쇼핑을 하듯이 읽고 싶은 책을 찾는다. 마침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정말 내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한 제목에 이끌렸다. 9명의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글을 쓰는 마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쓴 에세이다.
작가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영화감독이면서 시나리오 작가인 전고운, 기자이자 작가인 이다혜, 음악가/단편영화/뮤직비디오 감독 그리고 작가인 이랑,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의 백세희 등 모두들 평범하지 않은 능력자들이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조차도 쓰는 일이 술술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쓰기 싫어서 갑자기 청소를 한다든가 애써 외면하고 시간을 보낼 다른 것들을 찾는 모습은 바로 내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읽는 내내 미소를 띠면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곡선의 그래프 모양처럼 쓰고 싶다가 다시 쓰기 싫어서 슬럼프가 왔다고 외치는 내 반복적인 일상을 떠올렸다.
글을 쓴다는 일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으로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감옥을 선택한 사람도 나이고, 감옥 문을 잠근 사람도 바로 나다. 언제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강제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쓰는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 아니 만족 아니 배출의 느낌 도대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그것을 맛보면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그 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계속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쓰기 싫다 힘들다 이런 말을 연일 입으로 내뱉으면서. 왜 굳이 이걸 선택해서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나 할 때도 있다. 재미있게 놀 것들이 온통 널렸는데 말이다. 때로는 싫다는 연인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집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 김훈 작가의 인터뷰를 봤는데,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냐는 질문에 선생의 대답은 길어야 2시간 정도라고 한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도 3시간 정도라고. 아침에 첫 문장을 긁적이는 순간 그날 잘 써진다 안 써진다 느낌이 온다고 한다. 만약 안 써진다 싶은 날이면 그냥 다른 걸 하며 논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마감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고 결국은 억지로 앉아야 할 때가 온다고 한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의 9명의 작가들과 김훈 작가에게서 위로와 함께 다들 나와 같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고는 맘이 편안해졌다. 물론 쓴다는 행위 전에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그냥 쓰지 않고 논다고 표현한 대가의 겸손일 것이다. 하지만 쓰고 싶어 하면서도 매번 쓰는 것에서 도망치고 싶은 내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기분이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시오”라는 이정표를 발견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