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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2403

by 모래알


코로나 시기동안 동네 CGV에서 영화를 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규모가 작은 극장이라 상영관 사이즈도 조그맣고, 코로나의 여파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한 경우에는 2~3명, 좀 많은 날도 열명이 채 안되었다. 상영관 맨 끝줄에 앉아서 아무도 앉지 않은 빈 좌석으로 가득한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마치 시네마천국의 주인공처럼 영화관을 독차지한 기분이었다. 변두리 작은 영화관에서 혼자 앉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좋아 코로나기간 동안 뻔질날게 들락날락했다. 지금은 코로나시국도 끝났고 가끔씩 영화를 보러 간다. 예상과 달리 상황은 코로나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상영관 안에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물론 내가 평일에 보러 가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아니면, 갑자기 비싸진 영화표 가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도 내 소소한 힐링타임은 현재진행형이다.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영화관을 찾는 사람이 확실히 전보다 줄어들었다. 다들 집에서 넷플릭스나 통신사 IPTV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본다고 한다. 우리 집만 해도 넷플릭스, LG유플러스 TV, TVING 등을 이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만 해도 집집마다 TV 밑에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는 비디오대여점에 가서 빌려오고는 했다. 유치원생이던 아들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불법 비디오복사본을 사서 하루에도 몇 번씩 틀어주고는 했다. 그러다가 DVD란게 나타났다. TV 밑의 비디오플레이어는 DVD 플레이어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비디오대여점에서 DVD도 같이 대여를 했다. 그 시절 사놓았던 애니메이션 DVD가 변함없이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새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TV 화면의 크기도 예전의 몇 배 사이즈로 월등하게 커졌고, 편하게 소파에 자리를 잡고 불을 끄면 금세 거실은 혼자만의 영화관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관에서는 자리를 잡은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이 영화가 재미있든 재미없든 간에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운이 좋게 영화가 감동적이고 맘에 들었다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시하거나 재미없는 영화였다면 괜히 헛돈 쓰고 시간낭비했다고 후회를 하며 주변사람들에게도 절대 보지 마라고 험담을 할 것이다. 집에서 VOD로 영화를 보는 것은 모든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좀 보다가 별로이다 싶으면 바로 다른 영화를 찾으면 된다. 굳이 참고 끝까지 볼 필요가 없어졌다. 거실에서 TV로 보든,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보든 캠핑을 하며 텐트에서 보든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보고 싶은 때 아무 데서나 보면 되는 것이다. 이전의 수동적인 위치에서 능동적인 사용자가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세대들과 예전의 수동적인 생활에 익숙한 기성세대와의 간극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몇십 년째 구태의연하게 변화가 없는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 또한 당연하다. 기성세대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답답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일 수도 있다. 실생활의 많은 것들은 기술적으로 매일매일 급변하고 발전한다. 하지만, 교육이나 기업과 같은 사람이 만든 시스템들은 옛것을 답습하고 있는 이 불균형의 모순이 언제쯤이나 해결될까? 젊은 세대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 때쯤이면 무언가 해결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될까? 시행착오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씩 변화하는 길을 선택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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