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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와 물고기

202408

by 모래알


햇살 좋은 느지막한 오후, 매일의 일과인 강아지 산책을 나섰다. 오월의 신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이 계절은 매일매일 다양한 꽃들을 선물한다. 학교 담장에는 붉은색장미들이 가득하고, 다홍색 양귀비로 가득한 꽃밭은 절로 사진을 찍게 만든다. 도서관 가는 길목 냇가옆에는 노랑 코스코스들이 바람에 흔들려 눈부시고 호수 주변 둘레길에는 노랑꽃창포가 여기저기 만개했다. 평소와 같이 느릿느릿 경치를 즐기며 걸어가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호숫가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10여 초 이상 움직이지 않고 얼굴을 들지 않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드디어, 고개를 들었고 기다란 부리에 자신의 얼굴의 2~3배는 되어 보이는 물고기 한 마리를 야무지게 물고 있었다.


고개를 든 지 10여 초 지나서 다시 물속으로 얼굴을 떨어트린다. 10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물고기를 문 채로 머리를 들어 일자로 선다. 왜가리는 연신 고개를 들었다 물속으로 숙였다, 들었다, 숙였다,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아마도 평소 먹던 먹잇감보다 덩치가 큰 물고기를 운 좋게 잡은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크서 한입에 쉽게 들어가지지가 않는 거다. 꾸역꾸역 넘기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모양새다. 여전히 살아있는 물고기는 파닥파닥 몸부림을 친다. 힘이 들면 다시 물고기를 물속에 잠깐 뱉어서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서서는 부리 속으로 밀어 넣는데 계속 실패 중이었다. 이상한 반복적인 행동은 왜가리의 힘겨운 식사장면이었다.


결국 부리로 집어넣는데 성공을 했다. 하지만 너무 큰 물고기를 기다랗고 가는 목으로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아서 한참을 부동의 차려자세로 서서 천천히 슬로모션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없이 서있는 왜가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평소 먹던 대로 한입에 쏙 들어가는 작은 피라미나 먹지 왜 욕심을 부려서 저럴까. 저렇게 살면 안 되지, 다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는 거지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언뜻 들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이런 속담을 만든 사람은 옆의 뱁새가 황새처럼 되는 게 싫었던 뱁새일까 아니면 뱁새가 자기를 따라오는 게 두려웠던 황새일까?


과연 그 물고기는 왜가리에게 욕심이었을까? 또 다른 도전으로는 볼 수 없을까? 뱁새가 황새를 따라 하면서 보폭을 키우는 것이 가랑이가 찢어지는 결과 단지 그 하나뿐일까? 우리가 무모하다고 손가락질한 타인의 행동이 성공하는 순간 사람들의 평가는 달라진다. 물론 실패하게 되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할 것이다. 무모한 욕심과 새로운 도전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최악의 리스크까지 고려해서 준비하고 실행을 한다면 그것은 도전일 것이다. 반대로 부족한 부분을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고 무작정 덤벼든다면 도전이 아닌 탐욕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욕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욕심이 먼저 생기고 그것을 이루고 싶어서 준비를 철저히 하고 그리고 난 후 도전을 하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변화 없는 삶은 큰 문제없이 안전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삶을 마무리할 때 후회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하지 않던가. 요즘은 선택의 고민을 할 때 더 많이 힘들고 불편한 쪽을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익숙하고 편한 길이 맘도 편하고 위험도 적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도전하는 것이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다. 전에는 삶에 정답이 있어서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냥 내가 걸어온 길이 내 삶이고 내 정답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싶다. 점점 더 마음이 두근거릴 일이 줄어든 요즘, 신중한 만반의 준비가 동반된 작은 모험을 선택하자. 그러니 왜가리야, 너의 욕심을 나는 지지하고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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