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

2409

by 모래알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세끼를 정성 들여 만들기보다는 마음이 내킬 때만 에너지가 넘쳐서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 올여름이 시작되기 전에는 오이지를 담갔다. 50개, 100개 이렇게 많이는 못 하고 최초의 도전이었던 작년에는 오이 5개, 올해는 개수를 좀 늘려서 10개로 담갔다. 소꿉장난 같은 수량이다. 옛날식 오이지는 항아리에 오이와 끓인 소금물을 넣고 그 위에 큰 돌을 올려서 눌러놓는 방식으로 만든다. 그에 비해 내가 만드는 방법은 저염식으로 소주 1병과 소금:설탕:식초를 2:2:1의 비율로 넣어 일주일만 상온에 놓아두면 된다. 피클과 비슷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새콤달콤하니 내 입맛에는 딱 좋았다.


오이지의 맛을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오이지의 맛을 알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산 사람인 내가 이 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수원에 살기 시작한 24살 그 이후이다. 말린 가오리나 강정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주셨던 자칭타칭 요리고수인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장아찌류의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저장음식으로 먹은 거라고는 집에서 만든 젓갈 종류뿐이다. 추운 겨울이 짧아 초록야채를 구하기 쉽고 바다에서 해조류나 생선 같은 먹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부산은 아마도 야채 장아찌 같은 음식이 불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나에게 오이지의 첫인상은 그냥 그저 그랬다. 생긴 모습도 썩 손이 가지 않았고 최초 맛본 이후로는 다시 찾게 되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도 바뀐다더니 어릴 때는 손도 안되던 대파나 버섯을 어른이 돼서 좋아하게 된 것처럼 오이지도 마흔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맛있게 여겨졌다. 하지만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면 먹을 정도의 애정이라 굳이 사 먹거나 만들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작년에 우연히 유튜브의 간단한 요리법 소개에 혹해서 5개 작은 양으로 첫 시도를 했다. 완성된 오이지 중 2개는 친한 언니에게 무침을 만들어서 선물했고 나머지 3개를 맛있게 먹었다. 양이 좀 아쉬웠어서 올해는 10개를 만들었다. 무쳐도 먹고, 냉국도 해 먹고, 김밥에 단무지 대신 넣기도 하고 오이지를 싫어하는 가족들 몰래 여기저기 은근슬쩍 끼워서 밥상 위에 올렸다. 거의 다 먹고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아서 아껴두고 있다. 내년에는 50개 정도 도전해서 여기저기 나눠줄 계획이다.


오이지는 참 볼품없는 외모를 가졌다. 싱싱한 초록의 색은 사라지고 소금에 찌들어진 누리끼리한 색에 탱탱한 젊은 피부 대신 주름만 자글자글하고 수분끼 없이 깡마른 외양은 나이가 들어 구부정해지고 어눌해진 늙은이의 모습이다. 외모만이 아니라 맛도 그렇다. 신선한 오이의 물기 많은 시원한 맛이 아니고 짜고 쿰쿰한 맛으로 변했고 질겨지고 성깔 있는 식감을 가졌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생의 모습들이 잔뜩 뭉쳐진 고집 같달까. 싱그런 오이도 쭈글쭈글 오이지도 모두 존재감 있는 요리로 탈바꿈해서 식탁 위를 차지한다. 무더운 여름 오이지무침이나 시원한 오이지냉국은 입맛을 돋워주는 음식이다.


사람도 오이지처럼 살아가면서 짠맛, 단맛, 쓴맛, 신맛 온갖 강한 맛들에 절여지고 담가지면서 질겨진다. 순수하고 철부지 같던 모습에서 어느 순간 딱딱하고 이해타산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진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의 모습은 거센 삶의 시간을 열심히 걸어온 증거라고 받아들이자. 물론 풋풋한 시절, 아름다운 시간들은 항상 그리운 나날들로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염도가 높은 소금물 속에 절여지고 있는 중이다. 큰 돌이 누르고 있는 답답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맛있는 오이지가 되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러가며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