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살이 되고 나서는 매일매일 출퇴근 버스에서 고민했다. 50의 문턱이 가까워졌다는 실감과 함께 참 오래 살았구나, 그 오랜 시간 동안 뭐 하고 살았지라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도 못했고, 부자가 되지도 못했고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도 못 되었다. 참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인생이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개발자 일은 삶이라는 큰 그림 앞에서 그저 돈벌이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50이 되었을 때 이제는 나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책이었다. 몇 년 전 그려놓은 그림과 함께 시 10편 정도를 엮으면 작은 소품 같은 책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결심과는 달리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참 어려웠다. 시 쓰기는 점점 흐지부지되었다.
게다가 아홉수의 태풍 같은 힘든 시간을 맞닥뜨리면서 모든 게 어그러져 버렸다. 50이 되던 해, 번아웃에 지쳐서 하던 일도 그만두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무기력감과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허우적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2년을 채우고 있었다. 마침, 세상은 코로나로 난리통이어서 이래저래 안팎으로 힘들 때였다. 우연히 방문한 쇼핑몰의 작은 서점에서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퇴근 후, 독립출판>(구선아) 이런 제목이었다. 독립출판이 뭐지 라는 호기심에 책을 집어 들었고, 읽자마자 그 순간부터 내 꿈은 “독립출판으로 책 한 권 내기”가 되었다. 무기력감을 근근이 이겨내고 있던 나는 독립출판이란 그 단어를 계기로 작은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그 책을 쓴 작가는 독립서점을 운영하면서 글도 쓰는 사람이었다. 독립출판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만든 책이었다. 독립출판이란 1부터 100까지, A부터 Z까지 혼자의 힘으로 책을 만드는 거라고 한다. ‘출판기획 - 원고 쓰기 - 편집 및 교정 - 디자인 - 인쇄 제작 - 유통 - 홍보마케팅’의 전 과정을 포함한다고 한다. 혼자서 책을 만든다니, 너무 솔깃하지 않은가. 50이 됐을 때 하고 싶었던 작은 시집의 꿈과 일치하기도 했다. 아직 만나지 않은 미래의 내 책을 떠올리며 사라졌던 희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책을 구매한 2022년 12월 6일부터 지금까지 내 휴대폰 배경 화면에는 “55세까지 독립출판으로 책 한 권 내기”라는 목표가 적혀있다.
3년 전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으로 지금의 내 모습이 정해진 것이다. 독립서점, 독립출판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내가 책을 내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밀어주었고, 책을 만든다는 막연한 생각뿐인 나에게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줬다. 이것이 어쩌면 책이 가진 힘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책이 어떤 일을 벌일지 알지 못한다. 겹겹의 인연을 거쳐서 책과 독자가 만나게 되는 건지도. 내 첫 번째 책의 여정은 그날, 그 책을 만난 날 시작되었다. 올해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 그 책을 다시 꺼내어 읽고 있다. 줄을 긋고 열심히 메모했던 페이지를 만날 때마다 예전의 나를 다시 만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한 나를 다시 만난다.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게 된다고. 너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소리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