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OO 씨의 반일(半日) (2)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다른 두 사람의 대화

by 세니seny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1층이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앞에 선 여자 두 명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야, 영웅재중하고 우에노 주리 나온 드라마 뭐지? 에이타도 나왔는데”
“노다메? 그거 아냐?”
“아냐 아냐 그거 말고”
“에이타도 나왔다면서... 그럼 그거 같은데”
“몰라, 그거 아닌데... 근데 에이타 얼굴이 좀 변해가지고...”

둘은 그 드라마 제목을 맞추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였지만 둘은 스스로 생각해 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극히 드문 광경이었다. 둘의 브레인스토밍이 시작되었고 온갖 드라마 제목스러운 단어나 문장들이 등장했다. 그러다 도중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중국영화 제목이 나오면서 반전을 꾀했다. 정답 쪽으로 가까워진 느낌.

"'말할 수 없는 비밀' 아냐?"
“맞아,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
“응, 뭔가 문장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할 수 없는....”
"뭐더라"

나는 왜 내가 보지도 않은 드라마 제목을 출연진 이름을 듣자마자 정확하게 떠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드라마 제목은 바로 ‘솔직하지 못해서’라며 마음속으로 몇 번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들과 일행이 아닌 나는 그 말을 차마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그러는 사이 11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다.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좁은 공간에서 갑자기 넓은 공간으로 퍼지며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자연히 그 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나와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데 이런 식으로 우연히 같은 공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한다. 그들에게 전혀 초대받지 않았지만 갑자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지고 심지어는 지금 내 옆에 있는,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나를 더 잘 알아줄 것 같은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 그러고 보면 아까 옆에서 흥에 취해 중경삼림 OST를 찾아 들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그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신촌의 밤거리를 걸어 내려온다. 혼자 서울의 밤거리를 걷는 건 오랜만이다. 학원도 안 다니고 회사도 안 다니니 밤에 통 나다닐 일이 없다. 그리고 어제와 그제와 그 그저께도 밤거리를 걷긴 했지만 서울이 아닌 제천의 밤거리를 친구와 함께 걸었으니 무효다.


아마 제천의 의림지에서 물린 듯한 커다란 모기자국이 긴 청바지 속에서 간지러워 미치겠는데 긁을 수도 없다. 아마 이 모기자국도 지난번처럼 이상한 멍 같은 푸르딩딩한 색을 띠며 사라지는 건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편의점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안 나온다. 이상하게 멀게 느껴지고, 배가 고프다. 이렇게 오늘 밤도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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