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빌려왔어요
2014년 여름에 쓴 글입니다.
주말 2박 3일 동안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관람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인 어제 서울로 돌아왔다. 원래는 월요일 아침에 하는 ‘첨밀밀’을 볼까 매우 망설였지만 한 편 때문에 하루 일정을 늘리는 건 지금의 나에겐 무리였고 사치였다. 구직 자니까 넘쳐나는 게 시간이라지만 돈도 돈이거니와 가족의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제천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포기하는 대신 서울에 와서 다른 영화를 보기로 했다.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 개봉을 맞아 CGV에서 ‘왕가위 감독전’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몇 년 전에는 어느 독립영화관에서 ‘중경삼림’과 ‘아비정전’을 상영해 줘서 본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훨씬 많은 작품이 라인업에 올라 있었다. 시간과 줄거리를 보고 적당히 추려 3편을 보기로 했다. 일단 이미 봐서 좋아하는 ‘중경삼림’과 나머지 두 편은 이번에 처음 보는 영화로 정했다. 오늘은 ‘중경삼림’과 ‘타락천사’가 예정되어 있다.
‘중경삼림’은 봐도 또 봐도 좋은 것 같다. 자주 보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잊을만하면 봤던 게 아주 주효하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잊어버린 장면들도 되살리고 대사에 다시 감동받고 새로운 음악도 발견했다. 영화 보고 나와서 ‘타락천사’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의자에 앉아있는데 옆에 앉아 있는 여자분도 아마 나와 같은 부분에 꽂힌 모양이다.
나는 영화 말미에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한 인상적인 노래(왕비가 부른 夢中人이라는 노래)를 검색만 했고 집에 가서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분은 벌써 이어폰을 꽂고 밖으로 다 들리게 혼자 흥얼거리며 앉아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나는 괜스레 웃음이 났고 같이 신이 났다. 역시 이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는 생각을 했다.
이 감동을 더 즐길 새도 없이 바로 ‘타락천사’를 보러 입장했다. 왕가위 감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중경삼림‘과 비슷한 연도에 찍었는지 비슷한 분위기와 이야기 구도와 색감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여전히 두 명/두 명의 도합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고 두 커플이 직접적으로 얽히지는 않지만 묘하게 같은 공간 안에 살고 있다.
‘중경삼림’과 다르게 '타락천사'에선 나머지 둘이 만나긴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검색해 보니 그 둘의 관계는 본편과 속편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경삼림’을 보고 ‘타락천사’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 했는데,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상영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타락천사’에 나왔던 파인애플 대사나 왜 두 편에 모두 등장하는 금성무의 캐릭터 이름이 동일한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타락천사’는 ‘중경삼림’보다 더 뜬금없고 더 어둡고 음악도 그렇게까진 매력적이진 않아 오늘은 조금 아쉬웠다. 다음번에 볼 때는 또 어떤 생각이 들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