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나의 엄마는 엄마이자 가장 친한 친구

by 세니seny

(2021년 시점에 쓴 글입니다.)


얼마 전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공공기관으로 이직 준비 중이란 이야길 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서울뿐만 아니라 요즘은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도 많으니까 그런데를 노려보는 건 어떻냐고, 이제 엄마의 마수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왜 갑자기 여기서 마수란 단어가 튀어나왔나, 생각하며 마수의 뜻을 굳이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마수(魔手) : 음험하고 흉악한 손길.
(from. 네이버 국어사전)


나도 엄마와 같이 살고 가까이 사는걸 '마수'라고 느낀다면 친구의 말에 맞다고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아마 좀 더 어렸을 땐 그 말에 충분히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에게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뭣하고 친구는 나름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걸 본 이유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메시지로, 글자로 대화를 하고 있었으니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넘겼다.


누군가 나와 엄마와의 관계는 어떠하냐고 묻는다면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라 답할 수 있다. 나는 엄마를 나의 엄마로도 생각하지만 본받을 점이 많은 하나의 인간으로도 생각한다.


내가 엄마를 보고 본받을 점이 있다고 느끼는 건 엄마가 다섯 남매의 둘째이자 아빠의 배우자이자 나와 동생의 엄마라서가 아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떼어 놓고 그냥 한 개인으로서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삶을 대하는 태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문제가 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 것.
살아온 시간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
냉정한 듯 하지만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겐 따뜻함을 지니고 있는 것.
이재에 밝은 것.
유머를 잃지 않는 것.

좋은 의미로 욕심이 많아서
뭘 하든 정말 열심히 하는 것.


엄마가 내 나이였던 시절, 엄마가 다니던 직장에서 큰 금액은 아니지만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매월 월급 외에 수당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여태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의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러고 출근해서는 원래 하던 대로 일을 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전자책도 없는 시대이니 공부해야 할 내용을 수첩에 적어놓고는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며 공부했다. 물론 집에 와서는 원래 하던 집안일까지 해낸 대단한 사람이다.


친구가 말하는 '마수'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로 엄마의 존재가 너무 가깝기 때문을 꼽은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엄마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엄마랑 내가 사이가 좋다고 해서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별개다. 결혼을 안/못하고 있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문제다. 오히려 엄마도 결혼을 못/안 하고 있는 나를 걱정하지만 나의 의사도 존중해 준다. 그러니까 억지로 선자리를 구해오거나 하진 않는 것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가족도 소중하지만 친구들도 꽤 소중하게 생각했었다. 같이 회사욕도 하고 나를 답답하게 하는 부모님이나 엄마에 대한 험담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보니 결국 내 곁에 남는 건 가족 밖에 없었다.


친구도 물론 곁에 남을 수 있지. 하지만 친구관계는 구속력이나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남이 될 수 있다. 물론 가족이라고 해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많고 나도 동생과 그럴 뻔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아프거나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내 곁에 조건 없이 남는 건 가족뿐이다.


내가 지금 아무리 외롭다, 이직하느라 힘들다 해도 친구들은 더 이상 내 얘길 들어줄 여유가 없다. 자신만의 가족이 생겼으니까 그게 삶에서 1순위가 된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가정을 잘 챙기고 그다음에 친구나 주위를 돌보는 게 맞는 거다. 나 역시도 가정이 생긴다면 그렇게 할 거니까. 다만 나는 친구가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마수'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라 생각한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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