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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무조사 이야기 (상)

별 거 없는 3번의 세무조사 경험담

by 세니seny

나는 여태까지 10년 동안 회계팀에서 일하면서 3번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직접 조사관을 대면해야 하는 급은 아니었지만 그 급이 아닌 사람들도 뭔가를 하기는 한다. 그래서 그 간의 기록을 남겨본다.




첫 번째 세무조사


첫 번째, 두 번째 세무조사를 받을 때 나는 사원이었다. 입사한 지 3년도 채 안 된 새파란 쌩 신입사원. 세무조사 하면 뭔가 뉴스에 나올법한 일을 저질러서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일정 규모가 되는 회사들은 5년마다 정기적으로 세무조사가 나온다고 했고 그게 내가 입사한 지 1년 정도 됐을 시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 전쯤의 이야기다.


세무조사가 언제 시작된다고 확정되었고 회의실 하나를 세무조사관들이 사용할 용도로 세팅해야 했다. 사무실의 제일 막내였던 나는 다른 직원 한 명과 내 상사와 함께 회의실에 놓을 각종 물건과 간식거리들을 사러 다니기 시작했다. 작게는 업무 상 필요한 사무용품과 문구에서부터 슬리퍼, 칫솔치약세트 등 그분들이 상주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을 물품들까지.


그리고 간식거리 세팅도 꽤 중요한 일이었다. 그분들이 머무는 한 달치를 한꺼번에 사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백화점 지하에 가서 고급 과자들을 사 날랐다. 그들과 식사를 같이 하진 않았지만 점심시간 이후에 먹을 커피를 사다 드리라고 해서 점심시간이 끝나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서 회의실에 넣어 드리기도 했다. 그때 '이런 게 바로 커피셔틀인가? 후후후'라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렇지만 내가 커피셔틀이라고 해서 전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부서의 다른 사람들은 자료 만들고 대응하느라 더 고생하는데 사원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이런 것들밖에 없었다. 이것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 해야 했다. 그리고 심부름의 대가로 때로는 나도 법카로 음료수 한 잔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낮에는 내 할 일을 하다가 여섯 시가 넘으면 조사관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그들이 가고 나면 쓰레기통을 밖으로 내놓고 간단하게 회의실 정리를 하고 내일 먹을 간식거리들을 세팅하고 나서야 퇴근한다. 세무조사가 이루어지는 약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칼퇴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세무조사 관련해서 직접(?) 관련되었던 건 과거의 매입 세금계산서 자료 불부합 자료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각 거래처에 전화해서 자료를 받을 수 있는지, 왜 불부합인지 확인하라는 업무가 주어졌다. 전자세금계산서가 도입된 건 2010년부터였고 그 이전엔 전부 종이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기 때문에 둘 중에 한쪽이 신고를 누락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보고 연락처부터 검색해서 전화를 하고 -> 다시 재무팀이나 경리팀을 바꿔달라고 하고 -> 그러면 부서 내 담당자에게 전화를 연결해서는 우리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데 불부합 자료를 확인해야 하니 그 당시에 받은 세금계산서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미 5,6년 전 자료였기 때문에 그들도 오래된 자료를 뒤져야 했으니 쉬운 부탁은 아니었다. 전화를 받은 거래처 직원 중에는 자기 일처럼 생각해서 친절하게 대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본인들도 서류를 뒤지고 시간을 써야 하니 불친절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세금계산서는 서로 주고받는 자료다 보니 확인해 줄 의무는 있으니 전화를 하는 게 불편하진 않았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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